“저는 ‘PC통신 세대’입니다. 습작을 하던 20대 중반에 PC통신이 처음 보급됐고 인간관계가 ‘하이텔’을 중심으로 재편될 만큼 거기에 몰두했죠. ‘인터넷 세대’인 오늘날 20대의 세태를 묘사한 이번 작품은 어찌 보면 제 20대를 모델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죠.”
1968년생 소설가 김영하(사진)씨가 자신과 ‘띠동갑’이자 ‘신빈곤계급’인 80년생의 생태를 그린 장편 <퀴즈쇼> (문학동네)를 펴냈다. 올 2월부터 8개월간 연재한 작품을 수정해 내놓은, 작가의 다섯 번째 장편이다. 22일 간담회에서 김씨는 “내 전작들을 내 얘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나, <검은 꽃> 처럼 죽은 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에서 썼다면, <퀴즈쇼> 는 오늘날 살아 숨쉬는 20대들의 조력으로 완성한 작품”이라고 특유의 달변으로 말했다. 퀴즈쇼> 검은> 퀴즈쇼>
김씨 작품으론 드물게 1인칭으로 쓰여진 이 작품의 ‘나’는 80년생 이민수. 함께 살던 외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거액의 빚을 짊어지고 거리로 나앉은 그는 1.5평 고시원에서 편의점 ‘알바’를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인터넷으로, 그곳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사귀고 ‘퀴즈방’이란 채팅 사이트를 찾아 지적 쾌감을 누린다. 어느날 편의점에서 해고되고 방값을 못내 고시원에서도 쫓겨난 그에게 수상쩍은 사내가 큰 돈을 내밀며 ‘정신의 피와 살이 튀기는’ 퀴즈 배틀 참가를 권한다.
김씨는 이번 장편에서 “‘네트워크화 돼있지만 외로운’ 20대의 처지를 형상화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대가 겪는 빈곤과 고립은 선진국에서도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임에도 부박과 무책임의 징표로 비난 받는다”며 “문제는 당사자들조차도 자기 처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도피하면서도 사이버 공간에선 죽자 사자 경쟁에 뛰어드는” 20대의 세태를 그리고자 김씨가 시도한 것은 판타지. 그는 ‘퀴즈 배틀’이라는, 현실인지 환상인지가 모호한 무대를 설정함으로써 외환위기 때의 자신들보다 훨씬 더 사회에의 희망과 감각을 잃어버린 오늘날 젊은이의 세태를 형상화했다.
등단 12년 만에 장편 및 소설집 8권을 쏟아낸 김씨는 “나이는 많지 않지만 부지런히 써왔으니 문단의 ‘미드필더’ 쯤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가흠, 김애란 등 70, 80년대생 작가들에 대해 그는 “재미있고 잘 쓴다”면서도 “이들이 장편을 통해 자신의 세계 인식을 보여줄 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기작으로 당대의 얘기를 다룬 장편 연작을 구상 중이라는 김씨는 “일본 작가들을 보면, 언제나 면발을 뽑고 있는 우동가게 주인처럼, 여러 매체에 동시에 작품을 쓰고 있다”며 “부지런히 창작해야 겠다는 생각에 올 초 교수직(한국예술종합학교)도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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