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는 매우 복잡하다.
15개 소련연방이 발트해 3국과 12개국으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으로 쪼개질 때만 해도 중앙아시아는 국제사회의 관심밖에 놓인 무주공산과 같은 곳이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도 당시 미국의 국익과 직결된 중동과 남아시아, 남미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독재와 쿠데타로 악명을 떨쳤지만 이해관계를 느끼지 못한 미국에는 남의 일일 뿐이었다.
그러나 2001년 중국의 주도하에 등장한 상하이협력기구(SCO)는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를 일거에 뒤흔든 태풍의 눈이었다.
중국 러시아와 함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대거 참여한 SCO는 정치ㆍ경제적으로 보다 동등한 국제질서를 확립하자는 취지에서 태어났지만 이면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기 위해 북미와 서유럽, 일본을 잇는 미국의 '앵글로_아메리카 구도'에 대항하는 의미가 더 강했다.
'테러와 분리주의, 극단주의에 맞서 싸워 지역 안정을 도모한다'고 규정한 SCO 헌장은 일견 미국이 주도하는 대 테러전에 보조를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중앙아시아의 테러세력은 미국과 영국 정부에 의해 은밀한 방법으로 자금과 무기 등을 제공받아왔다.
SCO 회원국 정부를 뒤흔드는 몇몇 분리주의, 극단주의 세력은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기까지 했다. SCO는 대 테러전이라는 똑 같은 명분을 내걸었지만, 테러리스트를 보는 시각에서 미국과는 창과 방패처럼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SCO가 정치ㆍ경제 협의체에서 군사동맹으로까지 외연을 넓히고, 카스피해 지역이 천연자원, 지정학적 가치면에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중앙아시아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의 사활을 건 국익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 이란을 방문한 것은 이란 핵문제 보다 테헤란에서 별도로 열린 카스피해 연안 5개국 정상회담에 더 큰 방점이 놓였다는 게 중론이다.
카스피해의 자원권과 군사적 이용권의 배타적ㆍ독점적 권리를 선언한 카스피해 정상회담은 카스피해, 나아가 중앙아시아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거대한 에너지 게임'이 시작됐음을 선언한 장이 됐다.
구도는 미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2003, 2004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불어 닥친 중앙아시아의 색깔혁명은 점차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미국이 지원하는 반 러시아 구 소련국가들의 협의체인 '구암(GUUAM)'은 2005년 우즈베키스탄의 탈퇴를 계기로 해체 일보직전에 와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의 이슬람 세력의 준동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미한 국면이다.
실지(失地)회복을 노리는 러시아와 자원외교를 앞세워 주변국으로 팽창하는 중국, 이슬람 세력의 발호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중앙아시아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는 무대이자 미국의 21세기 위상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 "중동 주도권 놓칠라" 美 위기감
미국과 러시아ㆍ이란의 대결 구도에 터키의 쿠르드 지역 침공 계획까지 겹치면서 중동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 보기 힘들 정도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은 미국이 실제 이란을 공격할지 여부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모두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며 워싱턴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만큼 이란의 핵무장이 인근 국가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전은 아프간ㆍ이라크전과 달리 러시아 중국 등이 연루돼 있어 자칫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 와중에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 '이라크 3분할' 방안이다. 미국 상원은 지난달 이라크를 쿠르드족, 수니파, 시아파 등 3개 지역으로 분할해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 국가로 만들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부시 대통령이 이 결의안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화당 의원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졌을 만큼 파장이 만만치 않다.
'이라크 3분할 방안'은 내전 상태에 있는 세 정파간 분쟁을 끝내기 위해 제안된 것이지만, 전문가들은 중동 일대의 분리와 분쟁을 부르는 또 다른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중동 각처에 흩어져 있는 쿠르드족 때문이다.
1차 대전 후 민족국가 건립에 실패했던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쿠르디스탄'이란 민족국가 건국을 위해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해왔다.
유전을 끼고 있는 이라크 내 쿠르드 지역이 자치권을 획득할 경우 건국 운동으로 이어져 중동의 지도 자체가 바뀔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최근 터키와 시리아 정상이 쿠르드 침공 공조를 약속하며 "이라크의 영토적 통일성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같은 폭발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라크 3분할 방안을 만지작거리는 데는'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반미 시아파 벨트 형성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아파인 이란과 시리아 사이에 있는 이라크에서마저 수니파인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시아파가 득세하고 있다.
자칫 시아파 벨트가 완성될 경우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 3분할은 결국 중동 일대의 분리를 촉발해 반미 동맹을 해체하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전략적 우방 지역인 터키를 놓칠 수 있고 중동 일대를 화약고로 만들어 석유 시장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이란 무력화에 나선 미국이 당장 이란과의 전쟁을 감행하기도, 그렇다고 중동 자체의 분리주의를 유도하기도 어려운 상황임을 드러내고 있다. 부시의 선택에 따라 중동은 또 다른 역사의 격변기로 접을 것으로 보인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 '反美연합과 美사이' 中 줄타기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을 지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미국에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로 경고했던 '러시아-이란-중국' 반미 연합 등장의 최대 변수는 중국이다. 러시아, 이란, 중국간 협력이 가시화하고 있지만, 중국은 미국ㆍ유럽과의 파트너십도 유지하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중국 역시 중앙아시아의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경쟁에 발을 깊숙이 담그고 있다. 2005년 중국석유공사가 42억 달러라는 거금으로 페트로카자흐스탄을 인수하고 카자흐스탄에서 중국을 잇는 파이프라인도 건설하는 등 유전 확보를 위해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붓고 있다.
중국은 특히 이란의 원유 지역에도 1,000억 달러대를 투자하고 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소비량을 충족시켜야 하는 에너지 수입국 입장으로서 러시아나 미국보다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중국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상하이협력기구를 형성한 것도 자원 확보 경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나 미국 수출 등 대미 교역이 활발하다는 점에서 노골적으로 반미로 돌아선 러시아ㆍ이란과는 선을 긋고 있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목을 매는 까닭에 국제적 분쟁에도 최대한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당장 상하이협력기구만 해도 러시아가 군사동맹에 무게를 싣고 있는 반해, 중국은 경제협력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양측의 미묘한 입장차가 드러나고 있다. 현재로선 러시아ㆍ이란 대 미국 대결에 중국이 오히려 완충 지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란 제재에 대해 중국이 반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란 전이 발발할 경우 중국 또한 반미로 돌아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에너지 확보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에너지 경쟁국이다. '러시아-이란-중국'이란 거대 반미 벨트가 형성될 국제적 여건이 성숙되고 있는 것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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