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주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란의 핵보유가 평화를 해친다고 외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종말론과 같은 3차대전을 경고한 것은 황당하다는 느낌을 준다.
백악관 기자회견의 준비된 발언이라 흔한 말실수로 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진지한 경고로 듣기에는 이란의 핵능력 등 총체적 국력과 의지가 미국과 서방 동맹을 상대로 세계대전을 도발할 정도인지 도무지 의심스럽다.
■그런대로 의문을 풀 실마리는 부시가 "이란에는 이스라엘 말살을 원한다고 공공연히 떠든 지도자가 있다"고 말한 데 있다. 이스라엘의 강경한 국가전략에 비춰 이란이 존립을 위협하면 전쟁이 날 것이라는 경고로 들을 만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3차대전 예상은 지나치다.
이스라엘은 혼자 이란을 상대할 힘이 있고, 동맹 미국이 지원하면 전쟁을 한층 쉽게 이끌 것이다. 이에 비춰 부시는 하루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의 평화적 핵개발 권리를 옹호, 미국과 서방의 군사적 압박을 견제한 것에 강력한 역공을 폈다는 해석이다.
■부시의 민감한 반응은 이란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이 지난 주 테헤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우호협력을 다짐한 것과 관련이 깊다. 이들은 카스피해 유전 다툼 등은 뒷전에 밀어둔 채 '외세개입 불용'을 선언하는 등 미국의 이란 압박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부시는 푸틴 대통령이 서방과의 공조체제를 벗어나는 것을 경고하는 한편, 서유럽 동맹과 결속을 다지기 위해 극단적 경고를 동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세계대전'은 광범한 전쟁지역과 동맹 간 대결을 상징하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부시의 발언은 이라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쟁 불장난'을 하는 것이 누구냐는 비판을 불렀다. 서유럽 진보언론은 부시가 서방 동맹이 흔들리고 중국 러시아와 외교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냉전과 대테러 전쟁에 써먹은 3차대전 경고를 다시 꺼냈다고 비웃었다.
또 이는 부시의 의식구조가 혼란돼서가 아니라, 공화당 보수세력의 오랜 권고를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깅리치 전 하원의장 등은 국내외 보수세력의 지지를 재규합하려면 이라크 전쟁과 북한 이란의 핵문제, 레바논 분쟁 등을 묶어 3차대전으로 부각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부시가 뒤늦게 이를 좇는 것은 그만큼 처지가 어렵다는 얘기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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