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선택 2007 시대정신 대기획] <1> 민주화를 넘어서 어디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선택 2007 시대정신 대기획] <1> 민주화를 넘어서 어디로?

입력
2007.10.22 00:03
0 0

■ 안병직 vs 김우창

시대정신 대기획의 첫 토론은 '민주화를 넘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총론적 주제를 다뤘다. 토론자인 안병직, 김우창 두 원로 학자는 현대사 분석을 시작으로 세계화 진단과 극복론, 미래의 시대정신 모색에 이어 대선구도에 이르기까지 종횡으로 담론을 주고받았다. 대화의 톤은 낮고 부드러웠지만 내용적으로는 치열한 탐구와 논쟁이 전개됐다.

"앞으론 선진화 시대… 성장률 높여야 양극화도 해소"

_해방 이후 현대사를 건국, 산업화, 민주화 시기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내년이면 건국 60주년인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말씀을 해주십시오.

안병직 교수= 건국, 산업화, 민주화 시대에 이어 앞으로는 선진화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4단계의 시대는 서로 단절돼 있는 게 아니고 누적적으로 발전한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가 이뤄졌어요. 건국의 시기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가 만들어졌고 산업화 시기에는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되고 기업이 발전해 민주주의 조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6ㆍ29 선언은 산업화 세력들이 이제 민주주의를 해도 되겠다고 해서 나온 것으로 민주화세력과 타협한 산물이지요.

김우창 교수= 크게 보면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갈래로 진행됐습니다. 누적적인 면도 있고 갈등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큰 유혈사태 없이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시대는 꼭 마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본 체제로서 민주화의 과정은 마감했지만 내실 있는 문화가 되고 생활의 일부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자유보통선거, 대통령 직선제를 하면 되는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요즘 나오는 선진화에 대해선 좀더 논의가 필요합니다.

_’87 체제’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87년 이후 이른바 민주화 시대에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했다고 보시는지요.

안= 87년 이후 20년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군부축출, 대통령 직선제, 공직자 예비선거제도 수용 등 민주주의가 착실히 발전했지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김영삼 정부 때 경제개발계획체제가 무력해지면서 시장경제체제가 자리잡았습니다. 물론 그 때 개혁을 제대로 못해 97년에 IMF 사태를 맞았고 이후 김대중 정부가 금융, 기업제도 등을 시장경제체제에 맞게 정비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과거 20년의 업적은 대단한데도 불구하고 왜 한국이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을까를 생각해봅니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정쟁이 너무 치열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보수 진영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데 반해 진보 정권은 참여민주주의를 얘기하는데 사실상 민중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입니다. 경제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부정합니다. 민중민주주의는 경제적 평등을 의미합니다. 문제를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정치 체제로 풀려고 하니까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역사가 실패했다기보다는 진보, 보수진영이 생각하는 정치, 경제체제의 비전이 다른 것이지요. 그런 데서 갈등이 증폭돼 한국사회가 불안한 거라고 봅니다.

_과연 진보진영이 체제 변혁적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고 보는데요.

안= 진보진영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요. 사회민주주의로부터 극좌까지 다 있습니다. 진보가 사상적으로 분화를 하면 나름대로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진보진영에서 혁명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상당히 수그러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난 20년을 평가한다면, 경제성장률 낮다는 지적도 있지만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엄청나게 큰 경제성장률로 발전해왔습니다. 민주주의도, 경제도 진보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국민중심의 정치 체제와 제도 구축이라는 두 요소를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여러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기구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장의 과실을 분배하는 제도를 만들지 못했고 투명성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 생활의 안정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해요. 분배론자에게나 성장론자에게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주택문제나 직장문제 같은 것이에요. 삶의 질은 일상생활에서 결정되는 데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안정을 못 찾고 있다면 지난 20년을 주도한 민주화세력의 잘못이라 할 수 있습니다.

_논의를 좁혀 97년 이후 중도진보, 또는 중도개혁 정부를 보도록 하지요. 한국일보 여론조사(19일 보도)를 보면 87년 이후 생활이 나아졌다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지난 10년만 따지면 ‘나아졌다’와 ‘그렇지 않다’가 비슷합니다.

안= 87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져 왔습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양극화가 진행됐습니다. 양극화?치유방법으로 지난 10년간 진보세력이 제시했던 것이 복지정책입니다. 결과는 양극화가 심해졌고 실업률도 자꾸 높아졌습니다. 복지정책을 펴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생산적인 복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교육투자, 기술투자, 직업훈련을 강화하고 경제성장률 높여서 좋은 직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생산적 복지입니다. 생산적 복지 대신 소비적 복지만 늘어나니까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입니다.

김= 언젠가 신문을 보니까 이해찬 전 총리가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한 기사가 났더군요. 하지만 동기가 아무리 좋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비판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현 정부의 결과를 보면 여러 가지로 부족합니다. 지금 우리의 복지정책은 실제로 생활이 되느냐는 관점에서 보면 성공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다면 빈부격차가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봅니다. 정부가 기본적인 서민생활이 안정되도록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습니다.

기대 상승도 문제입니다. 생활의 안정을 위해 중요한 문제가 주택입니다. 절대적으로 주택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그냥 살 집이 아니라 좀더 살만한 집을 원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주택을 나중에 돈 되는 자산으로 봅니다. 이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 성장이냐 분배냐는 식으로만 접근해서는 해결이 안됩니다.

안= 아주 중요한 지적을 하셨는데요. 현 정권이 양극화 문제를 얘기하면서 ‘부자 20%, 가난한 사람 80%’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빈곤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아요. 양적인 정책을 썼지만 사람들은 즐거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 요즘 빈곤은 양적인 빈곤이 아니라 질적인 빈곤이기 때문입니다. 빈곤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해지고 싶다는 것이 빈곤문제의 본질입니다. 어떻게 부유해지게 하느냐는 방안을 생각해야 하는데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해주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택을 예로 들면 안락한 주택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주택의 가격이 어떻게 되느냐를 놓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반값아파트를 공급했는데 실제로 반값아파트는 없었습니다. 품질도 낮고 재산가치 상승전망도 없기 때문이지요. 이 정부는 빈곤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_IMF 사태 이후 세계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기업이 크고 경제성장이 이루어져도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론이 제기됩니다.

안= 세계화가 무한경쟁을 부추기니까 양극화를 가져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부자는 자꾸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자꾸 가난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세계화 때문에 국내기업이 밖으로 나간다고 소극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고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신흥공업국(NICS)들의 고도 성장은 세계화 덕분입니다. 자국이 갖고 있는 조건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선진국의 기술과 제도들을 흡수했기 때문에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텔이 우리 나라에서 아시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정부가 대처를 못해 중국으로 갔습니다. 만약 인텔이 한국에 왔다면 우리는 삼성과 같은 기업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것입니다. 보잉사도 그런 선택을 하려고 할 겁니다. 그런 기업 10개만 유치하면 한국은 선진국의 성장잠재력을 끌어안게 됩니다. 이를 위해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세계화는 양극화를 심화하는 경향도 있지만 대처에 따라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어요. 김= 세계화를 비판만 해서는 안 된다는데 동의합니다.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도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화에 노출돼 희생만 한다는 것은 철 지난 얘기에요.

다만 실직자 등 후유증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에는 정부가 대처해야 합니다. 독일은 스스로를 ‘사회국가’로 정의하는데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삼되 파생되는 여러 문제를 국가가 해결하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사회국가체제를 받아들이든 아니든 사회적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또 국가의 조정 없이 기업만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처럼 국가가 기업이 할 일을 대신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은 곤란합니다. 정부는 기업이 순기능을 하도록 적절히 작동돼야 합니다.

“생활 속 민주화는 아직 멀어… 성장·분배 함께 가야”

_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다수의 서민과 낙오세력은 존재하게 되는데 성장론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요.

안= 자유시장 기능을 살려야 합니다.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잘 움직이도록 제도를 움직이자고 합니다. '시장은 빈부격차를 악화시킨다' '시장의 이런 기능을 손봐야 한다'고 말하면 변혁론자인데 이것은 보수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산업도 국유화하고 왕창 세금 거둬 분배하는 사회통합 이론은 실패했습니다. 시장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 낙오한 사람들에게 직업훈련을 시켜 강자가 되도록 하는 생산적 복지를 해야 합니다.

_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론과 안 교수님 말씀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론 노무현정부는 다르다고 보는데요.

안= 두 정부는 다릅니다. 사람이 다릅니다. DJ 때 경제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은 미국에서 유학한 자유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노무현 정부 사람들은 다 유학하지 않은 까막눈입니다. 물론 나도 유학하지 않았지만….

김= 김대중 정부도 그렇고 노무현 정부도 너무 이념적이고 자기정당성에 입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많은 실패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더했지요. 이념은 필요하지만 이념의 현실적응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파인 튜닝(fine

tuning)을 해야 합니다. 유럽은 물론 미국도 우리보다 훨씬 강한 사회복지정책이 있지만 그게 갈등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주택 150만호 짓고, 실업자 구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기업들에 대해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섬세하게 대해야 하는데 이것을 이념화해서 투쟁적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동(東)으로 간다고 하는데 서(西)로 가는 결과가 나왔어요.

안= 두 정부는 방향 뿐만 아니라 능력에서도 차이가 나요. 능력이 없으면 이념적으로 가요. 노 정부는 하는 일이 안되니까 자기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이념적으로 간 것입니다.

_지난 20년, 10년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앞으로 어떤 시대정신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안= 선진화 즉 선진국 수준으로 한 단계 더 높아지는 모더나이제이션(modernization)이겠지요. 내용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심화라고 봅니다. 대의민주주의는 활발한 국민참여가 어렵습니다. 국민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선 지방자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를 심급(審級)별로 심화시켜야 합니다. 바탕에 참여 민주주의가 있고 그 위에 사회 단체들이 민주주적 결정을 내리는 결사체 민주주의, 또 그 위에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자문하는 심의민주주의, 그 토대 위에 대의민주주의가 올라와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는 성장률을 높여야 합니다. 지금처럼 잠재 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는 안됩니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면 우리는 20년 내에 선진국 진입할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가 좋은 사례죠. 1987년 국민소득이 1만 달러였는데 세계 유수기업을 흡수하는 세계화정책으로 지금은 영국보다 소득이 더 높은 3만 달러 국가가 됐습니다. 분배를 제대로 안 하면 성장률 높일 수 없다는 논리는 잘못됐습니다. 성장률을 높이면 양극화도 해소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통계보면 성장률이 떨어지면 양극화가 심해졌습니다.

김= 성장, 분배는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인간화의 측면도 생각해야 합니다.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등을 고려, 환경친화적 기술과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또한 정치참여를 통한 민주주의의 확충도 중요하지만 생활 세계의 안정이 중요한 목표가 돼야 합니다. 생활이 안정되고 정치가 억압적이 아니라면 참여민주주의는 크게 중요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듭니다. '생활 속의 안정'에서 중요한 문제가 주거입니다. 먹고 사는 게 궁한 사람도 자기 동네가 안정돼있고 직업이 안정돼있으면 행동이 단정해집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부자건 서민이건 모두 가방 들고 호텔에서 사는 것처럼 불안정하게 보였습니다. 영국은 자기가 태어난 데서 쭉 사는 사람들 많아요. 그렇게 되면 공동체의식도 생기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되지요. 정치도 그런 점을 고려해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안= 굉장히 좋은 말씀입니다.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 사람들은 철새입니다. 한 곳에 살지 못하고 옮겨다니는 철새기질과 급속한 도시화가 연결됐지요. 게다가 주택이 투자대상이 됐어요. 어떻게 철새를 텃새로 만드느냐를 연구해야 합니다.

김= 그 문제가 핵심이에요. 복합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의식과 문화의 문제입니다. 우리동네는 집값이 안 올라가요. 다른 데보면 집값이 올라가는 데 좋아하더라구요. 나는 세금 더 내는데 왜 좋아하냐고 묻습니다. 그 사람들은 팔 생각이 있기 때문이거든. 우리가 한 집에서 계속 살 생각이 있다면 땅값 상승에 거부감을 느껴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보냐, 보수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도 타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가 민생안정 문제에 있어서는 이념을 초월해 타협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_정치현실로 가보겠습니다. 불과 3년 전 탄핵정국에서 현 정부가 압도적 지지를 받았는데 지금은 보수우위 구도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대선 일까지 갈 것으로 보시는지요.

안= 정치 지향적이었던 한국인들이 생활지향적으로 변해가면서 진보 지지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국민湧?생활을 기준으로 정당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이명박씨는 서울시장할 때 보니 잘 살게 해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쪽(진보)은 좋은 이야기는 하는데 생활은 점점 나빠진다는데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대선구도가 보수쪽으로 가는 것은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북한에 김정일이 없다면 오히려 노무현씨 같은 진보적 정치가가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보수 쪽에 가봤더니 그 쪽 사람들이 아무런 자각도 없어서 저 사람들이 정권 잡아 뭐 하려는지 저도 확신이 없더라구요. 한번 더 정권을 더 잃으면 자각하겠지요. 그런데 북쪽 김정일이 자꾸 장난을 치면 한반도가 너무 불안해서 못살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나선거지요. 보수 쪽에 한번 정권이 넘어가면 진보도 대오각성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진보가 지금처럼 사상적으로 분열되고 지리멸렬하고 능력이 없으면 다시는 정권을 잡을 수 없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정한 진보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에는 역사적으로 정권교체가 있어도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김= 안 선생님 말씀대로 진보진영이 대오각성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 인정합니다. 이명박씨가 좋으냐 정동영씨가 좋으냐 문국현씨가 좋으냐를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국일보 여론조사를 보고 놀란 것은 계층, 소득, 교육정도와 상관없이 경제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또 한편으로 복지에 대한 강한 소망도 있더라구요. 이명박씨든 정동영씨든 어느 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타협의 정신을 살려 조화시켜야 합니다. 또 하나 여론조사에서 흥미롭게 느낀 것은 남북통일에 대해 강한 견해가 있더군요. 정동영씨가 되면 적극적으로 나서겠지만 이명박씨가 되더라도 그런 여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질적인 통일이 안되더라도 상징적인 제스처라도 계속하는 것은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하나 더 보태고 싶은 것은 너무 큰 차원의 이념적인 관점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를 실용적인 입장에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안= 보수진영이 집권해도 그런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포용정책에는 회의적입니다. 상호주의를 해야 합니다. 물론 10원주면 10원 받자는 식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주면 저쪽도 하나씩 개선해야지요. 10ㆍ4 공동성명 냈는데 '과연 실현되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어요. 한나라당이 집권하다면 정당하게 개혁개방을 요구하고 인권문제 해결도 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식으로 해야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까요.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적 효과만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김= 개혁개방을 너무 이야기하면 대화가 진전되지 않으니까 그렇겠지요. 현실적인 진전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해결이 없을 때도 상징적 제스처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 안병직 교수는

1936년 경남 함안생

서울대 경제학과, 동 대학원,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1986년 일본 동경대 경제학부 교수

1992년 경제사학회 회장

1998년 한국개발원 이사장

2001년 서울대 명예교수,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2005년 뉴라이트재단 창립

현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저서 <근대조선공업화 연구> , <한국 경제성장사>

● 김우창 교수는

1936년 전남 함평 출생,

서울대 영문학과, 미 코넬대 대학원, 하바드대 문학박사

1965년 '청맥'誌에 '엘리어트의 예'로 등단

1974년 고려대 영문과 교수

1993년 도쿄대 교환 교수ㆍKBS 비상임이사

2000년 고려대 대학원 원장, 국제문학포럼 조직위원장

2003년 고려대 명예교수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조직위 위원장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계간 비평 발행인, 예술원 회원

저서 '심미적 이성의 탐구' '정치와 삶의 세계' '시대의 흐름에 서서' 등

사회=이영성 부국장

■ "세계화는 피할수없는 도전적 현실 '우리만 희생' 주장은 철 지난 얘기"

"세계화는 반대나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 대처, 극복의 대상이 돼야 한다."

2007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보자는 한국일보 대기획의 첫 토론에서 대표적 보수 학자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와 명망있는 중도진보 학자인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세계화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규정하고 대안 모색에 무게를 두었다.

두 원로 학자는 시대정신을 접근하는 시각이나 자세에서 일정한 편차를 보였지만 세계화 주제에서는 넓은 접점을 보여주었다.

안 교수가 세계화의 불가피론을 말한 것은 보수의 당연한 논리였지만 김 교수가 "유럽 국가들도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데 우리만 희생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철 지난 얘기"라고 설파한 대목은 주목할 만 했다.

역으로 민주화 세력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려온 안 교수가 이날 1987년 이후 민주화 20년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시기였다"고 평가한 것과 비견될 만 했다.

다만 세계화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는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안 교수는 "세계화를 통해 선진국의 기술, 제도를 흡수하면 폭발적 성장이 가능하다"면서 "우리가 대처를 못해 인텔이 중국으로 갔는데 그런 기업 10개만 끌어오면 선진국의 성장잠재력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어 "이를 위해선 국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 그런 시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기업만으로 운용되는 국가는 없다"면서 "실직자 등 세계화에서 비롯된 문제들은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국가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노무현 정부처럼 국가가 직접 기업처럼 움직여서는 안 된다"며 "국가 기능은 기업의 순기능을 위해 적절히 작용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성 기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