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원주에서 가톨릭문화운동을 하고 있던 시인 김지하(66)는 농촌계몽극 <진오귀굿> 의 대본을 썼다. 농촌 문제를 상징화한 세 마리 도깨비인 수해귀, 외곡귀, 소농귀를 농민들이 단합해 진압한다는 내용이다. 전통 농민굿인 오구굿의 양식을 확대, 극장이 아닌 야외에서 벌이는 탈춤 형태로 극화한 것이다. 진오귀굿>
김지하는 공연을 위해 서울대 연극반의 임진택(57)을 불렀다. 임진택은 당시 손학규에게서 우연히 빌려보았던 마오쩌둥의 책을 들키는 바람에 손학규는 구속되고, 자신은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임진택은 <진오귀굿> 의 연출을 맡고, 서울대 탈춤반의 채희완(59)에게 안무를 청했다. 진오귀굿>
채희완은 70년 서울대에 탈춤반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전국 대학 탈춤반 조직의 산파 역할을 하며 탈춤부흥운동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해서 전통 연희를 계승한 최초의 현대적 마당극 <진오귀굿> 이 탄생했다. 지식인과 농민, 연극패와 탈춤패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서울 제일교회에서 처음 공연됐다. 진오귀굿>
군사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젊은 지성인들은 민족적 형식에 민중적 내용을 담은 마당극에서 새로운 문화운동의 실마리를 찾았다. 우리의 것은 버려야 하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던 그 때, 탈춤과 판소리, 풍물, 굿 등 전통 연희의 양식을 계승하면서 한국의 현실 문제를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관점으로 담아낸 마당극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새로운 문화운동은 학교와 교회, 공장과 농촌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연극평론가 장성희는 “한국 연극이 근대 이후 서구 연극의 미학을 수렴하면서 신명과 풍자의 정신을 잃어버린 가운데 삶과 노동의 밀착감, 실내에 가둘 수 없는 우리 전통 극 유산의 펄펄 뛰는 기운에 주목한 민족극 진영이 정치적 압제와 사회적 억압에 대항하는 양식으로 내놓았던 것이 마당극”이라고 설명한다.
무용평론가 채희완, 판소리꾼이자 연출가 임진택. 이 두 사람이 30여년 전 시작된 마당극 운동의 중심에 섰던 이들이다. 74년 국립극장에 올려져 ‘극장에서 공연된 최초의 마당극’으로 기록된 <소리굿 아구> 역시 이들의 손에 의해 빚어졌다. “벗으라면 벗겠어요 당신이 벗으시라면 창피해도 벗겠어요 쪽팔려도 벗겠어요”로 시작하는 <소리굿 아구> 는 대일 굴욕외교 이후 일본의 경제적 침투를 기생관광으로 비판한 내용으로, 남사당 덧뵈기 중 먹중마당의 기본 골격을 원용했다. 소리굿> 소리굿>
채희완이 여대생 역을, 임진택이 쪽발이 역할을 맡았고 아구 역할은 김석만(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했다. 같은 해 채희완의 주도로 최초의 마당극 극단 <한두레> 가 만들어지면서 마당극 운동은 전문성과 활기를 동시에 갖게 된다. 한두레>
85년 채희완과 임진택의 공편으로 나온 <한국의 민중극> (창작과비평사 발행)은 이런 흐름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책이다. 한국의>
81년 계간 <창작과 비평> 에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라는 글을 게재해 마당극의 미학을 정리했던 이들은, <진오귀굿> 과 <소리굿 아구> 를 비롯해 70, 80년대 대표적인 마당극 14편의 연희본을 이 책에 담았다. 소리굿> 진오귀굿> 창작과>
마당극의 소재를 민족 문제, 농촌 문제, 근로자 및 도시빈민 문제, 사회 일반 문제,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 문제로 나누고 각각에 해당하는 작품을 2~3편씩 골라 해설을 붙였다.
연출가 이상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무대와 인물 배치를 설명한 그림을, 화가 김봉준이 삽화를 그렸다. 책의 편집 실무는 서울대 연극반 출신으로 한때 마당극의 뛰어난 배우였고 당시 창작과비평사에 다니고 있던, 나중에 영화감독이 된 여균동이 맡았다.
동일방직사건을 다룬 음악극 <공장의 불빛> , 광주 무등산 판자촌 철거반원 살해사건을 다룬 <덕산골 이야기> , 공해 문제를 소재로 한 <청산리 벽폐수야> 등등 이 책에 수록된 마당극이 공연된 곳에는 항상 채희완과 임진택이 있었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기획이든 연출이든 출연이든 관람이든 비평이든” 그 무엇에든 관여하면서 말이다. 청산리> 덕산골> 공장의>
채희완은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입에서 입으로, 몸에서 몸으로, 어림짐작 눈길로 전해질 뿐, 있었던 뒷자취조차 스스로 없이하려 했던 70년대 이후 마당의 연희를 추스려 모아 그 웅크린 정체의 일면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드러내보았다.
이 강요된 구비의 시대, 민중의 삶 속의 연희들은 이 시대 민중적 삶의 숨은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 작은 기록물은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민중의 끝내 살아있음을 소리없이 웅변하고 있다.”
이 책의 큰 가치는 입으로만 전해지던 마당극의 고전들을 기록함으로써 보존했다는 것이다. 한 번에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더하면서 쌓여가는 마당극의 속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암울한 시대상 때문에 마당극은 더욱 기록으로 남겨지기 힘들었다.
시인 김정환은 “판소리를 정리한 신재효가 있었기에 판소리가 예술 장르로 선 것처럼, 마당극 역시 채희완과 임진택에 의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마당극이 마냥 사회 비판으로 빠지지 않고 예술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들의 공”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민중극> 은 또 전통 극 미학의 계승과 민주화 과정에 필요한 정치의식 함양이라는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만들어졌기에 민족극 양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선명한 길잡이가 됐다. 시대를 담아내면서 토착적인 구어체는 읽는 맛을 살렸다. 한국의>
채희완은 “80년대 학자들이나 사람들이 마당극을 두고 ‘놀기만 하는 거지 뭐가 있겠냐, 탈미학이다’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임진택은 “이 책은 2명이 아니라 마당극을 함께 쓰고 기획하고 공연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며 “현장에서 일하면서, 싸우면서 쌓인 것들이라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 "대학가에서 위축된 마당극, 지역 축제로 갔죠"
"채희완 형이 수렴청정하고, 내가 광대짓을 했지."
임진택은 마당극 운동에서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을 이렇게 정리했다. 채희완은 임진택의 경기고 1년 선배지만, 3수를 하는 바람에 서울대 학번은 임진택이 69학번으로 한 해 빠르다. 임진택은 "형 때문에 내가 손해 많이 봤다. 70학번들이 나한테는 선배 대접을 안 해줬다"며 웃었다.
<한국의 민중극> 출간 당시 채희완은 청주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임진택은 전두환 정권이 3S 정책의 하나로 만든 대규모 관제 축제 '국풍 81'의 연출 거부로 KBS PD를 그만두고 연희광대패를 만들어 막 활동을 시작할 때였다. "창비 편집주간이던 이시영 시인이 책을 기획한 후 '채희완 교수가 적임자인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며 고민하길래 제가 그랬어요. 형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혼자 하면 10년 걸릴 테니 내가 거들겠다고. 그래서 1년 만에 책이 나왔다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한국의>
임진택의 입담을 은근한 미소로 받던 채희완은 인사동 찻집에 놓인 고가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걸 사용한 사람이 아니라 만든 사람, 바로 민중이야말로 한국 예술의 근간입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었던 길은 바로 굿과 풍물, 탈춤이었죠. 예전엔 대학에 탈춤반이 없는 데가 없었는데 요즘은 몇 군데밖에 남지 않았어요. 대학 축제도 상업문화의 교두보가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오늘날 마당극의 의미와 비중이 다소 위축된 것이 아니냐는 말에 임진택은 "대학로에서만 찾으려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20회째를 맞은 '전국민족극한마당'을 비롯해 지방으로 들어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고 답했다. 민중문화운동을 주도하던 마당극은 지방자치제와 함께 지역 축제의 주역으로 떠올랐고, 다양한 형식에 대한 실험도 이어갔다.
그러나 뚜렷한 풍자의 대상이 사라진데다 제도 밖에서 제도를 비판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 마당극의 위치가 모호해졌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마당극이 우리 문화예술에서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완성도 있는 작품 창작과 개발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채희완은 "제일 큰 문제는 공공의 적이 없다는 것, 아니 잠세화(潛勢化)됐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생명과 평등, 평화의 문제처럼 우리 속에 내면화된 공동의 적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됐다. 개인의 욕망과 사회가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마당극으로 옮겨올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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