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 창비386의 열정과 환멸… 시대, 내면의 기록
1979년 10월 18일 부산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이틀 뒤에는 마산ㆍ창원에 위수령이 내려졌다. 그 해 여름부터의 YH 사건, 김영삼 의원직 박탈 등으로 폭발한 이 지역 학생ㆍ시민들이 봉기한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탄압이었다. 부마민주항쟁은 그로부터 열흘이 못 가 10ㆍ26으로 유신체제가 종말을 맞는 계기를 만들었다.
오늘을 생각하며 왜 김인숙(44)의 소설이 떠올랐을까. 예전에 읽은 그의 <79~80, 겨울에서 봄 사이>라는 장편소설을 찾아보았지만 책은 절판되고 없었다. 부마-10ㆍ26-서울의봄-5ㆍ18 등으로 이어진 79~80의 싯점, 그 특정한 시기의 기억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
정치권의 자리들을 차지한 일부 동세대 때문에 터무니없이 욕 얻어먹고 있는, 이른바 386세대다. 김인숙은 그 세대의 작가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그들은 “현재의 어느 싯점이건 그것이 과거 어느 싯점의 후일(後日)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한고 사는 세대”다. 79~80과 이후 80년대의 기억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영원할 현재다.
김인숙의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 은 그 시절의 이상을 상실하고, 돈에 지배당하는 초라한 현실을 우울하게 감당해야 하는, 또는 환멸로 이 나라를 뜨는, 그 세대의 이야기다. 표제작의 주인공 여작가는 어느 졸부의 자서전을 대필한다. 거액의 원고료 제안에 술술 써지던 이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졸부의 자서전은 그러나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 서술 요구에서 막혀버린다. 그>
‘과거의 운동경력이 명문대학의 졸업장만큼이나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린’ 현실. 여작가는 잊고 있던 젊은시절의 꿈과, 매문(賣文)을 하고 있는 수치스러운 현실을 함께 떠올린다. “삶과 싸움이 하나로 통일”되는 꿈을 꾸던 그 시절의 젊음은 그렇게 “무심히 실려온 세월의 흔적” 앞에서 노여워하고 있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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