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더 하실 말씀이 없으면 준비해 온 질문을 해도 될까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위해 먼저 말을 끊어야 했다. 말문을 어떻게 트나 고민하는 여느 인터뷰와 달랐다. 미스터리 사극 <궁녀> 에서, 데뷔 후 처음 단독 주연을 맡은 박진희(29)는 시원시원 거침이 없었다. 앉자마자 묻지도 않은 부산영화제에 관한 생각을 콸콸 쏟아내는 그녀를 두 글자로 줄이면 ‘솔직’. 진짜 속내가 뭔지 파고들 필요가 없어, 말을 나누기 참 편했다. 궁녀>
“옛날에는 ‘망하면 나 혼자 망하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엔 그게 아니잖아요. 감독이 선장이라면 내가 조타수쯤 되는데… <궁녀> 가 잘 돼서 ‘아, 궁녀에서 카메라가 누구였지?’, ‘궁녀의 조명 참 좋더라’ 이런 얘기가 영화계에 돌았으면 좋겠어요.” 박진희가 맡은 역은 구중궁궐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강직한 내의녀 천령. 영화의 흐름을 오롯이 혼자 끌고 가는 원톱(one-top)이다. 그녀는 굳이 부담감을 숨기지 않았다. 궁녀>
“엄청 부담이 되죠. 첫 사극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궁녀와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고. 찍을 때보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고민에 지금 더 부담이 커요. 어떻게 보셨어요?” 에둘러 박진희라는 배우의 카리스마에 대해 얘기로 답변을 대신하자, 이번엔 그녀가 말을 끊었다. “에이… 누가 저 때문에 영화를 보러 오겠어요? 객관적으로 박진희는 아직 그런 단계의 배우가 아니에요.” 괜한 겸양이라고 생각하기엔, 그녀는 너무 솔직했다.
데뷔 10년차. 초기에 청순가련한 역할을 맡던 박진희는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 (2006년) <쩐의 전쟁> (2007년), 영화 <만남의 광장> (2007년) 등을 통해 터프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맏언니 이미지로 굳어졌다. “나이에 맞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하자고 마음먹은 거에요. 하지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그런데 모두들 나한테서 ‘바른생활’의 이미지를 읽어내니 정말 내가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만남의> 쩐의> 돌아와요>
<궁녀> 에서 그녀는 다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청순함도 코믹함도 아닌, 할리우드에선 조디 포스터 같은 배우에게 주어지는 중량감이 느껴지는 캐릭터. “양아치 연기를 제일 잘 하는 배우, 서민적 역할을 제일 잘하는 배우 다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그렇게 정형화되지 않은 것 같아요. 배우로서 약점일 수도, 장점일 수도 있겠죠.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궁녀>
배우의 자존심을 걸고 이번 영화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물었더니 대답이 퍽 인상적이었다. “난 내 영화,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으하하하.”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해도 되냐고 되묻자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준익 감독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사람이 전면을 응시하며 2시간을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 영화 볼 때다.’ 그런 관점에서 제가 제대로 했는지를 스스로 평가한 결과죠. 부끄러움이 너무 많죠. 그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봐주시니 용기가 생겨요. 기자님도 그렇게 보세요?”
■ '궁녀' 궁궐괴담… 죽음을 둘러싼 궁녀들의 비밀
"입을 함부로 놀리면 혀를 뽑을 것이며, 궁궐 물건에 손을 대면 손목이 잘릴 것이다."
마치 병풍처럼 TV 사극드라마의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궁녀. 그들의 실제 삶을 어떠했을까. 18일 개봉하는 <궁녀> 는 구중궁궐에서 일어나는 여인들의 암투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영화다. 숨막히는 미스터리와 공포의 반죽을 사극의 틀로 찍어냈다. 궁녀>
왕자를 생산한 유일한 후궁의 궁녀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궁궐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모두들 사건을 덮으려고 하지만 내의녀 천령(박진희)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의 실체에 한 걸음씩 다가선다.
완성도 높은 시각효과와 리듬감 있는 전개로 영화는 비교적 윤기가 난다. 하지만 미스터리에서 호러로 건너 뛰는 간극의 비약, 복잡한 복선들을 마름질하는 솜씨가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팽팽하던 긴장감도 '원혼(冤魂)'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슬며시 자취를 감추는 느낌이다. 18세 관람가.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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