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대(對) 형평. 경쟁 대 균형. 성장 선두마차 대 성장ㆍ분배 쌍두마차.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확정으로 본선 레이스를 시작한 제17대 대통령선거전에서 '경제관의 대충돌' 조짐이 뚜렷하다. 외교안보 도덕성 지역감정 등 다른 변수들도 적지 않지만, 이번 대선만큼 주요 후보들이 경제를 보는 가치관에서 극명한 시각차를 나타낸 적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이에 따라 2개월여 남은 이번 선거전에선 후보들의 개별 경제공약 차원을 넘어 이를 관통하는 경제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측은 이 문제를 한나라당에 대한 공격의 핵심포인트로 삼은 상태다. 정 후보는 15일 후보선출 직후 수락연설을 통해 이명박 후보측의 경제관을 약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로 맹비난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경제운용기조를 상당폭 승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동영 후보측을 "무능한 좌파의 연장"으로 맞받아쳤다.
물론 정동영 후보측의 공격은 이명박 후보를 '소수 가진 자의 대변자'로 고립시킴으로써, 중산ㆍ서민층을 분리시키려는 의도다. 하지만 이런 전술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실제 두 후보간에는 경제를 보는 시각, 경제운용에 대한 철학에서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7% 성장-4만달러 소득-7대 부국'으로 압축되는 이명박 후보의 '경제강국론'은 분명 형평성보다는 효율성, 분배보다는 성장, 균형 보다는 경쟁을 우선시하고 있다. 경제운용의 중심축을 민간과 시장에 두고, 감세와 규제완화로 '작은 정부'를 실천한다는 구상이다.
금ㆍ산분리와 같은 재벌정책, 평준화를 배제한 교육정책도 같은 맥락이다. 공급경제학에 기초를 둔 전형적인 '우파' 경제관인 셈이다. 이명박 캠프의 경제브레인인 강만수 전 재경원차관은 "일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지이며 이 점에서 한나라당의 경제정책은 따뜻한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라고 '정글자본주의' 지적을 반박했다.
'정통경제론'을 표방하는 정동영 후보쪽은 반대로 효율보다 형평, 경쟁보다 균형, 그리고 성장 못지않은 분배에 상대적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시장경제를 옹호하지만, 저소득층 중소ㆍ영세기업 등 시장실패부문 보호를 위해선 규제나 증세 등 '큰 정부'를 배제하지 않는다.
무한경쟁도 좋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더불어' 가지 않고서는 성장과 심화는 힘들다는 것이다. 좌파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한나라당 보다는 왼쪽에 가있음이 틀림없다. 정동영 후보 경제자문을 맡고 있는 류근관 교수(서울대 경제학과)는 "이 정책들이야말로 교과서에 충실하고 미래지향적인 건전한 자본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크호스로 부상한 문국현 전 유한캠벌리 사장도 마찬가지. 세부공약은 내놓지 않았지만, 특히 기업에 대해 이윤을 최우선시하기 보다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성을 강조하는 그의 '지속가능 경제관'은 한나라당과 상대적 대조를 이룬다.
선거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효율과 형평, 성장과 분배 이슈는 경제의 오랜 본질적 가치이자 시대정신 모색을 위한 전향적 과정으로 평가된다. 대선을 통해 이를 국민들이 냉정히 평가한다면 우리나라 선거수준도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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