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좌우명은 수처작주(隨處作主)다. 어느 곳에서든 주인이 돼라는 뜻. 역설적이게도 그는 한나라당에서도, 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주인이 되지 못했다.
손 전 지사의 대권 꿈은 번번히 ‘과거’의 벽에 가로 막혔다.
한나라당에선 출신 지역과 살아 온 길이 문제였다.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정치 모험을 했을 땐 신당 후보 자리를 거의 거머쥔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엔 14년 간 한나라당에 몸 담았던 전력이 패인이 됐다. 그에겐 “욕심과 대세론에 취해 불쏘시개 역할만 했다”는 차가운 평가가 남았다.
손 전 지사는 이제 정치 생명을 어떻게 이어갈지를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는 14일 밤 경선 패배가 확실해진 뒤 측근들에게 “경선 불복이나 당 흔들기는 하지 않고 민주개혁 세력의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정치를 변화시키는 것은 버릴 수 없는 꿈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당에 남아 정치를 계속 할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앞으로 범여권은 후보 단일화를 모색하는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을 중심으로 재편될 텐데 그 사이에서 손 전 지사가 마땅한 역할이나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권토중래를 모색하는 동안 의탁할 조직이나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1947년생)도 적지 않다. 더구나 그는 아직도 범여권에선 ‘손님’이다. 경선 3등인 이해찬 전 총리와는 처지가 다르다.
이에 대해 대변인 격인 우상호 의원은 “경선이 제로섬의 권력 게임 형태로 진행돼 후보가 확정되면 상대 진영을 배척하는 한나라당과는 문화가 다르다”면서 “2002년 정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차기 꿈을 키운 것처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손 후보는 현재로선 대선 과정에서 적극 기여해 범여권에 뿌리를 내릴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승자인 정 후보가 패자를 어떻게 대우할지가 손 전 지사의 진로에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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