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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업 60년전 여는 90세 재미화가 김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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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업 60년전 여는 90세 재미화가 김보현

입력
2007.10.1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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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식은땀이 흘렀다. 1955년,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공항, 경찰이 잡으러 오지 않을까 뒷덜미가 싸늘했다. 조선대 미대의 첫 번째 교수였던 그는 여순사건 때는 좌익으로 몰려 심한 고문을 당했고, 6ㆍ25전쟁 때는 미군 대령의 딸에게 그림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인민군에게 고초를 당했다.

좌우 모두로부터 핍박 받으며 늘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었고, 내내 만성 소화불량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리하여 그는 미련 없이 고국을 떠났다. 그리고 반세기 만에야 백발 성성한 모습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윤수)이 뉴욕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국제적으로 그 성취를 인정받고 있는 재미 서양화가 김보현(90ㆍ미국명 Po Kim)의 작품 220여점을 소개하는 ‘고통과 환희의 변주: 김보현의 화업 60년전’을 내년 1월6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작가의 연대기를 따라 초기작부터 근작까지를 세 주제로 나눠 구성한 전시로, 2000년 작가가 조선대에 기증했던 작품 중 70여점과 작가 소장작 100여점 등을 한데 모았다.

6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붓 들기를 멈추지 않은 덕에 그는 20세기 미술사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화풍을 선보여왔다. 우선 제 1전시실에 들어서면 도미 전 자연주의에 입각한 구상적 경향의 작품들과 뉴욕 정착 이후 당시 뉴욕 화단을 주도하던 추상표현주의의 물결 속에서 시대의 고통을 거친 붓질 속에 담아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뉴욕 소호의 넥타이 공장에서 넥타이 점박이 그림을 그리거나 백화점 디스플레이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의 작품들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일상에 눈을 돌려 브로컬리, 파, 양파, 복숭아 등을 선(禪)적인 필치로 세밀하게 그린 정물화로 크게 주목받았다. 왜 꽃을 그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꽃은 이미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그는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그리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강조했다.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화가의 사명임을 보여주는 이 정물 작품들은 제2 전시실에 모여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제3 전시실에 걸린 80년대 이후의 작품들. ‘아틀리에에서의 백일몽Ⅱ’ ‘ 날개, 지느러미 그리고 얼굴’ ‘검은 태양 하얀 태양’ 등에서 보듯 대형화면에 포진한 인물과 동물, 식물들이 환희와 고통이 교차하는 낙원경을 펼쳐보인다. 작가의 과거를 떠올리면 화면 속 천국이 의외롭지만, 작가는 “고통스런 과거를 잊기 위해 오히려 환상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혜경 학예연구사는 “김보현의 그림은 삶이 자신에게 지워놓은 고통을 내려놓고 쉴 곳을 발견한 자가 노래하는 환희의 가락”이라며 “그의 개인사는 한국 근현대미술자 그 자체이자 더 나아가 20세기 후반 뉴욕 화단의 한 측면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재평가돼야 한다”고 전시의 의미를 설명했다. 관람료는 성인 4,000원, 청소년 2,500원. (02)2022-0600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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