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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런던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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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런던 스케치

입력
2007.10.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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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 / 민음사 "물론 나는 사람들을 불편케 하는 작가다"

1990년대 줄곧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 명단에 올랐던 도리스 레싱(88). 그가 드디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그의 작품을 숙제하는 기분으로 뒤늦게 펼쳐봤다. <런던 스케치> 는 레싱이 1987~1992년 발표한, 런던과 관련한 짧은 소설 18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레싱은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영국 런던으로 간 것은 1949년 30살 때, 두 번 이혼한 뒤였다. 1957년에 쓴 글에서 레싱은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런던에 온 첫 해,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나에게 런던은… 1년 동안은 악몽의 도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황혼이 건물을, 나무를, 주홍색 버스들을 친숙하고 아름다운 무언가와 하나가 되게 만들었고, 나는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졌다." 이 말처럼 <런던 스케치> 에 실린 단편들은 악몽과 안도, 좌절과 위안이 교차하는 현대인의 잿빛 일상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임신한 채 가출한 소녀 줄리가 남자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또래 소녀 데비의 집에서 살다가 더러운 창고에서 혼자 사생아를 낳는 과정을 그린 '데비와 줄리', 이혼한 남녀의 애인과 그 애인들의 전남편과 전처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의 갈등을 그린 '진실', 좁은 도로에서 마주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 두 대의 자동차와 그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다른 자동차들을 그린 '원칙', 카페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 호감 가는 남자에게 드리워져 있던 그늘의 비밀을 알게 되는 '카페에서', 온갖 인종이 오가는 런던의 지하철 풍경을 묘사한 '지하철을 변호하며' 등등.

레싱이 카페나 공원, 지하철, 병원을 배경으로 묘사하는 런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실 읽다보면 바로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레싱의 말처럼, 작가는 삶의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 우리를 흔드는 자다. "물론 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작가다. 그러나 작가의 장점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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