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에이즈 시대의 멜랑콜리한 영웅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에이즈 시대의 멜랑콜리한 영웅

입력
2007.10.15 00:03
0 0

필경 지난여름은 국제적 미술 투기의 바람이 정점에 달한 역사적 기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와 카셀도쿠멘타는 왕년의 비평 기능을 상실한 게 분명했고, 그 덕에 바젤아트페어를 위시한 미술시장의 그림장수들만 배를 불렸다. 이러한 ‘활기차게 우울한’ 상황에서 베니스의 비극적 영광을 차지한 작가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펠릭스 곤잘레즈-토레스(1956-1996). 퀴어/에이즈/이민자의 정치학을 주류 미술계의 주제로 격상시킨 장본인이다.

그의 작업의 특징은, 개념미술의 어법과 미니멀리즘의 형식을 차용해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들(대개 동성 연인 로스에 관한 것)을 숨기고, 그것이 전시되고 해석되는 과정이 정치적 비평 혹은 성찰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1991년에 발표된 ‘무제(로스)’는 색색의 셀로판지로 포장된 사탕을 집안 한 귀퉁이에 쌓아 놓은 것으로, 관람하는 누구나 사탕을 가져갈 수 있지만, 약79kg의 무게를 유지하도록 명시된 작품이다.

이는 에이즈로 투병하다 사망한 연인을 기리는 초상으로, 무게는 고인의 ‘정상 체중’과 동일하다. 당연 사탕은 연인에 대한 달콤한 추억에 대한 알레고리고, 관객은 사탕을 집어가는 행위를 통해 사적인 기억-행위에 동참하게 된다. 미술관에서 전시될 때 이 작품은, 소장 가능한 동시에 소장 가능하지 않고, 또한 전시 형태가 큐레이터에 의해 매번 조금씩 변화하고 또 관리돼야 하기 때문에, ‘설치 시대의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제도적 비평으로도 해석됐다.

그렇다면, 쿠바 태생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다 38살의 나이에 에이즈 관련 합병증으로 요절한 작가가, 사후 10여년 만에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의 주인공이 된 까닭은 뭘까? 제일의 이유는 총감독 로버트 스토의 정치적 이해에 있다. 90년대 미국현대미술의 주요 의제였던 탈식민주의는 21세기 들어 유럽에서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인인 스토로서는 탈식민주의를 다룬 주요 미국 작가면서도 유럽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를 영웅 대접할 필요가 있었던 것.

안타깝게도, 인위적 부활(?)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염치 상실의 행동도 불사하는 생존 작가들(예를 들면 영국관의 작가―트레이시 에민)과의 경쟁에서 죽은 자가 승리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한 번 되새겨볼 가치가 충분한 꽤 매혹적인 작가다. 평단이 아끼는 작가라, 관련 논문과 평문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한국 미술계엔, “곤잘레즈-토레스의 전시를 수입하면 곤란해요; 유사한 작품을 만든 이들이 너무 많아서”라는 농담이 떠돌 정도로, ‘영향을 받은’ 작가가 많다.

미술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