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입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ㆍ억류된 지 150일을 맞은 원양어선 마부노호의 한석호(40) 선장은 11일(현지 시간) “해적들이 수시로 때려 선원들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며 “하루 빨리 풀려 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 선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오늘도 해적들이 배에서 육지로 끌고 나가 ‘돈을 내놓으라’며 쇠파이프로 때려 온 몸에 피멍이 들었다”며 절박한 상황을 전했다.
한 선장 등 한국인 4명을 포함, 중국ㆍ인도네시아ㆍ인도ㆍ베트남인 등 총 24명의 마부노 1ㆍ2호 선원들은 5월 15일 아프리카 예멘을 향하던 중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들에 의해 납치됐다.
이들은 현재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북쪽으로 약 400㎞ 떨어진 어촌 하라데레 앞바다에 억류돼 있다. 마부노호 납치ㆍ억류 기간 150일은 해외에서 범죄ㆍ테러단체에 의해 발생한 납치ㆍ억류 사건 중 가장 긴 것이다.
한 선장은 “해적들이 환각 성분이 있는 나뭇잎 ‘카트(khat)’를 씹은 뒤 선원들을 마구 때려 일부 선원은 이가 흔들린다”며 “해적들이 인질의 귀 바로 옆에서 위협 사격을 해 한 선원의 고막이 터졌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일부 선원들이 말라리아에 걸리고, 또 다른 일부는 감기 몸살로 고생하고 있지만 의약품이 없어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래 전 배의 기름이 바닥나 밤이면 암흑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전한 한 선장은 “이젠 음식도 떨어져 해적들이 건네준, 돌과 모래가 섞여 있는 쌀로 연명하고 있다. 개, 돼지도 못 먹을 음식”이라고 절규했다.
한편 남편의 인터뷰 소식을 전해 들은 한 선장의 아내 김모(48)씨는 이날 “피랍 이후 외교통상부 직원이 ‘선주가 해결을 못 해도 정부가 책임진다. 문제가 시끄러워지면 몸값만 올라가니 인터뷰를 자제하라’고 했다”며 “그러나 9월 중순부터 발길을 끊고 지금까지 전화 한 통 없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며 피말리는 시간 속에 수면제에 의지해 겨우 잠을 청한다는 김씨는 “피랍자가 힘 없고 돈 없는 선원들이라서 그러는 거 아니겠냐”며 “아프가니스탄 피랍자는 사람이고 고기 잡으러 간 선원은 사람도 아니냐”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편 마부노호 선주 안현수(50)씨는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지난 주 석방합의서까지 만들었는데 외교부에서 몸값을 지원해줄 수 없다고 해 난관에 부딪혔다”며 “나중에 구상권을 청구하더라도 우선 석방금을 지원해 선원들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부산=김창배기자 kimc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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