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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황량한 자갈밭으로 바람은 떠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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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황량한 자갈밭으로 바람은 떠밀고­…

입력
2007.10.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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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넷 아이들과 함께 서해 바닷가로 놀러 갔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분교 운동장에서 잊혀졌던 옛날 놀이들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밀가루를 얼굴에 덮어쓰고, 두 사람이 하나로 묶인 다리를 절뚝거리며 티 없는 웃음들이 넓은 운동장을 바람처럼 떠다녔다.

숙소로 돌아와 시끄럽게 저녁을 해먹고는 올망졸망 둘러앉았다. “오늘 옛날 운동회 어땠니?” 재밌었다거나 즐거웠다는 대답을 기대하면서 편하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홀로 탈북한 금호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며 북에 두고 온 동생이 생각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십 년이 되도록 아픈 기억들만 품고 있던 거친 몸 속에서 작은 꽃 하나가 피어났다.

길 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시인이자 수필가인 조병준은 스스로를 두고 ‘세상을 떠도는 집’이라 얘기한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주어진 삶의 터에서 은둔하며 살아가던 나에게 어느 날 ‘이 세상에 제일 늦게 도착한 여행 생활자’들이 느닷없이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원치 않는 여행을 시작한 이들 탈북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고단한 여행이며, 세상을 떠도는 외로운 집이리라.

그들이 시작한 신 유목 생활은 그 동안 60여 년간 이념과 두려움으로 외면한 채 은둔해 왔던 삶의 기억을 새롭게 일깨운다. 우린 자유롭게 서로를 사랑했으며, 우리를 지탱해왔던 물줄기도 거침없이 남과 북으로 흐르지 않았던가. 아득한 곳에서 휘몰아치며 한반도 전체를 생명으로 이끌던 바람이 내 몸 속에서 쉼 없이 뒤척거린다. 여행 생활자 유성용의 길을 따라, 나는 ‘모래 폭풍 속의 황량한 자갈밭을 슬픔 없이 걷는다.’

“바람이 가는 방향 거기 언제나 내가 서 있다/ 바람 없이는 내 삶도 없다/ 살아 있다면 친구여 바람을 거슬러라/ 내 몸속에 깊이 박힌 생명의 외침, 그 넋이 살아 있다.”(김지하, <바람이 가는 방향> )

박상영 탈북청소년교육공동체 셋넷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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