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경제규모를 측정하고 성장률을 따지는 일반적인 잣대는 공식 달러환율로 표시된 국내총생산(GDP) 지표다. 유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관들이 내놓는 자료는 대부분 이 기준에 따른다.
그러나 시장기능이 원활하지 않고 국가가 가격을 통제하는 사회주의 체제나 독재정권이 지배하는 나라에 이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암시장이 횡행하는 까닭에 공식 환율로 같은 돈이라도 가치는 천양지차여서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구매력 평가(PPPㆍPurchasing Power Parity)’ 척도다.
▦ PPP는 같은 1달러로 살 수 있는 상품 또는 서비스의 양을 감안해 경제 실상을 비교ㆍ분석하는 개념이다. 정치ㆍ경제체제의 변동이 심한 후진국일수록 이 기준을 적용해 GDP나 1인당 소득을 산출하는 일이 쉽지 않고, 작업의 결과도 정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 중앙정보부(CIA) 인터넷사이트가 제공하는 은 일관되게 이 기준을 앞세워왔다. 정보기관 나름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느낀 까닭이겠지만, 특히 북한 등 베일에 휩싸인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현실과 추세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 CIA에 따르면 PPP 기준으로 지난해 북한의 GDP는 400억달러, 1인당 GDP는 1,800달러다. ‘북한이 국민소득 통계를 일절 제공하지 않아’ 1999년 OECD의 의뢰로 작성된 한 연구를 토대로 개략적으로 추정한 것이란다. 공식환율 기준 GDP는 아예 구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1990년부터 북한 통계를 발표해온 한국은행에 따르면 사실상 GDP를 뜻하는 북한의 2006년 국민총소득(GNI)이 256억달러이고 1인당 GNI는 1,108달러다. 국정원이 경작지 공장 도로 등의 변화를 포착해 건네준 자료를 가공한 결과다. 기준은 공식 환율이다.
▦ 유엔자료에는 작년 북한의 1인당 소득이 508달러로 나와 있다. 이쯤 되면 북한 경제에 접근하는 것은 미로 찾기와 같다. 남북 정상선언을 계기로 남북경협의 새 기원을 열려는 정부로선 돌아버릴 지경일 것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엊그제 “방북 때 경제통계 공개에 대한 북한의 의중을 떠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며 “현재로선 북한 경제의 실상과 정확한 통계를 구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토로했다. 그런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10년 내에 북한의 1인당 소득을 3,000달러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출발점도 없는데….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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