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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죄 필수코스 현장검증 가보니

입력
2007.10.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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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행동은 안 했어? 얼굴이나 가슴 때린 것 맞아?”

10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카페. 살해사건 현장을 재연하기 위해 60㎡ 남짓한 공간에 모인 영등포경찰서 소속 형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29)씨는 카페여주인 정모(49ㆍ사망)씨를 폭행한 뒤 흉기로 찌르는 과정을 태연히 재연하면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장검증은 주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의 필수코스다. 살인 등 강력범죄 뿐만 아니라 절도나 성범죄 등에도 필요에 따라 현장검증이 실시된다. 범행현장을 직접 포착하지 못한 사건을 증인과 피의자, 피해자간 진술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장검증을 하다 보면 숨겨졌던 범행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기도 해 경찰에겐 더할 나위 없는 수사기법으로 꼽힌다.

이날 현장검증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찰은 8월 14일 새벽 살해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살해 현장 카페를 찾았다. 강력팀 6명과 과학수사팀 4명, 지구대에서도 3명 등 모두 13명의 형사가 동원됐다. 피해자 역할을 할 1m가 조금 넘는 마네킹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흉기, 의자, 가방 등 현장검증에 사용될 소품을 동반했음은 물론이다.

형사 1명은 기자처럼 범행재연 과정을 꼼꼼히 메모했고, 과학수사팀은 동영상 및 사진촬영을 하면서 진행상황을 낱낱이 기록했다. 경찰은 피의자 김씨의 진술 내용을 중심으로 현장을 재연하는 모습이었다. 경찰은 “(범행 후)어디로 이동했지?”등의 말로 추궁했지만, 김씨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모르겠다”로 일관해 재연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카페 내실에서 흉기로 마네킹을 찌르는 장면이 다가오자 김씨는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 범행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김씨는 연신 “잘못했습니다”를 외치며 흉기를 잡지 않겠다고 버텼다. 경찰관계자는 “현장검증을 하다 보면 ‘모르쇠’로 일관하던 피의자들이 격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현장 재연을 접한 피의자들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다.

반면 지나칠 정도로 대담하게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피의자들도 있어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홍익대 앞에서 여성 회사원 2명을 납치 살해한 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이 있었던 지난달 3일. 피의자들은 홍익대 인근 커피숍 앞에서 도급용 택시에 피해자를 태우고 렌터카로 뒤따르는 모습을 재연했다. 피의자들은 피해자들을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하고 목졸라 살해하는 장면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던 여대생들과 수십 명의 시민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비명을 지르며 “사람이 저럴 수는 없다”며 손가락질 했다. 일부는 피의자 곁에 다가가기도 하는 등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격분한 주민들에게 자제를 유도하고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현장검증 과정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경찰의 임무다.

실제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노숙자 사이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재연하기 위해 6일 실시된 현장검증에서도 경찰은 피의자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우선 포승줄로 양팔과 두손이 묶인 피의자에게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쓰게 했고, 경찰이 쓰는 방진마스크까지 착용하도록 해 얼굴노출을 피했다. 또 주민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피의자 주변을 3~4명의 경찰이 둘러싸고 보호하기도 했다.

강병상 영등포서 강력5팀장은 “아무리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피해자라도 인권 자체는 보호돼야 하고 경찰에겐 그 책무가 있다”면서 “이번 사건은 노숙자 피살이라 사회적 관심이 적어 별 다른 마찰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혹시 모를 사태 방지를 위해 경찰병력 등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qoo77@hk.co.kr진실희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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