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이번 대선은 정말 이상하다. 투표일은 불과 두 달 남짓한데 경쟁 후보들의 얼굴을 모르겠다. 정책 대결을 통한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할 만하다.
대선은 지난 정부를 평가하고 새로운 국가적 비전을 모색하는 계기이며, 따라서 그 진행상황과 내용이 국민축제여야 한다는 점에서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 책임의 대부분은 대통합 민주신당등 범여권에 있다.
하지만 한국 대선의 예측 불가능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권자들의 선택과 결정에 꼭 장구한 기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범여권의 후보가 더 일찍 정해졌더라도 대선을 통한 국가적 비전이나 시대정신 모색이 훌륭하게 이루어지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 시대를 이끌어갈 거대담론을
원인이 무엇인지 몰라도 지금의 한국은 정치ㆍ사회적 통합능력, 시대정신을 천착하고 창조해 내는 역량이 총체적으로 부족하다. 인문ㆍ사회학적 상상력이나 시대에 대한 독해력도 빈곤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시대정신을 생각하는 후보가 적다.
사전적 의미에서 시대정신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된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또는 이념이다. 우리의 시대정신은 건국,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순으로 전개돼 왔다. 이런 연혁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1987년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하는 게 이번 대선의 초점이어야 마땅하다.
그 다음은 세계화, 좀더 구체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세계화, 낙오자 없는 세계화'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간화, 문민화, 윤리사회,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통일'을 내세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긴 하지만, 보혁의 대립요인을 길러온 갈등요소로서 기능하는 측면이 커졌다. 어쨌든 무엇인가 새것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
김영삼 행정부 이래 역대 정부는 각기 이름이 있었다. 시대정신이 담긴 그 명칭은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정부(김대중), 참여정부(노무현)로 이어졌다. 명칭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면 군부독재시대를 종식시킨 뒤 문민을 강조하다가 민과 군 모두를 아우르는 국민의정부를 만들고,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를 지향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간추리면 민주화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시대정신의 미숙아'라고 표현한 사람이 있었다. 더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할 미숙아가 섣불리 세상에 나와 나라가 어지럽게 됐다는 뜻이다.
그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가장 유력해 보이는 이명박 한나랑 후보는 실용정부라는 말을 제시했다.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국민성공시대, 이런 말이 곁들여졌다. '놈현스럽다(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평가를 받은 참여정부에 대한 반정(反正)의 의미가 실용정부에 담겨 있다.
그러나 왠지 작고 모자라는 것 같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식의 기업적 다짐이 연상된다. 뭔가 새로운 것, 시대의 핵심을 담은 거대담론이 필요하다.
당선 가능성과 관계없이 한국사회의 재편을 말하는 문국현 후보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런 점 덕분일 것이다. 낡은 20세기를 버리고 21세기로 가는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콘크리트경제에서 지식경제를 지향하는 그의 인간 중심 가치는 어쨌든 새것인 것이다.
● 의미의 폭 넓은 중국 '화해사회'
요즘 중국이 내세우는 말은 화해(和諧)사회다. 기본취지는 사회갈등과 빈부격차 지역간 불균형 해소, 민족ㆍ종교 간 갈등 완화다. 화해는 조화와 균형 성장, 인본주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구현하는 구체적 방안이다.
한자의 특유한 조어능력과 압축 덕분이겠지만, 이 말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 당과 인민의 조화, 경제와 정치의 조화, 중국과 세계의 조화 등으로 의미망(意味網)의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논의가 부진하고 그런 말도 나오지 않을까. 시대정신을 찾는 일이 노무현 정부때 너무 데여서 그런 것일까. 안타까운 일이다. 시대정신을 찾는 시대정신부터 회복해야 할 것 같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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