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 외교위가 10일 1915~1923년 사이에 자행된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집단 살해를 대량학살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찬성 27, 반대 21로 통과시켰다.
제1차 대전의 와중에서 무너져 가던 터키의 오토만제국이 광기에 사로잡혀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무차별적으로 희생시킨 것은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학살이라는 게 결의안의 핵심이다.
결의안 통과는‘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더욱이 동북아의 역사와 관련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미 하원 외교위를 거쳐 7월말 하원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과정을 가슴 졸이며 지켜봤던 우리로서는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의 성공 사례가 이번‘대량학살 결의안’추진에 직접적인 모델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과 미주 한인 동포가 느꼈던 자부심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 내 아르메니아 출신 이민자들은 우리 한인 동포가 했던 대로 미 하원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호소한끝에 절반이 넘는 의원들로부터 결의안에 대한 지지 서명을 받아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결집된 힘을 바탕으로 내달 중순께 대량학살결의안이 하원 본회의에 최초로 상정되는 것을 지켜볼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하원 외교위에서의 표결 직전에 “이번 결의안은 미국의 동맹인 터키와의 관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직접적인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적잖이 실망스럽다.
이라크전을 치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역사적 진실보다는 지금 당장의 터키 도움이 더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역사를 외면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독선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때 발동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기만 하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