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1> "북한산 노적봉 암벽이 내 인생 항로를 바꿨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1> "북한산 노적봉 암벽이 내 인생 항로를 바꿨다"

입력
2007.10.10 00:03
0 0

내 어릴 적 꿈은 에디슨 같은 위대한 발명가나 리빙스턴 같은 탐험가가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리빙스턴의 아프리카 탐험기나 아문센의 남극 탐험기 같은 글을 읽으면서 성장했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잠베지강을 탐험하여 빅토리아폭포를 발견하고, 나일강의 원류를 찾아내는 리빙스턴의 일대기도 감동적이었다. 인류의 발길이 미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탐험가들의 용감한 행적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20대 후반에는 법관으로 입신출세하려고 한판의 승부를 위해 육법전서와 법률서적 꾸러미를 메고 학교 강의는 적당히 미룬 채 산사(山寺)를 떠돌며 고시공부에 열중했다. 1960년대는 고등고시에 3,000명 정도가 응시하면 고작 3, 4명 정도가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합격의 관문을 통과하던 시절이었으니 6년의 세월을 투자한 손익계산서는 위장병을 얻은 것과 자괴감뿐이었다.

이 무렵 나는 북한산 자락 가오리에 있는 도성암에 둥지를 틀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법률서적과 씨름하며 여섯 차례나 낙방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 늪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것이 산이다. 낙방을 할 때마다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 함성을 외치며 울분을 쏟아 내거나 보현봉에 올라 동이 터 오는 새벽 산이나 노을에 비낀 한강의 도도한 흐름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쌓인 좌절감을 바람에 날려 버리곤 했다. 나는 서서히 산에 빠져들면서 등산에 병들어 가고 있었다.

스물 일곱, 스물 여덟 살 무렵 시도한 첫 암벽등반에 대한 추억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순간을 맛보게 해주었다. 정상에 서거나 어떤 성과를 얻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오르는 일만이 즐거웠을 뿐이다. 한국 산악운동의 심장부인 북한산 노적봉에 오른 그 등반은 내 스스로를 돌아봐도 만족할 만했다.

산악인들은 누구나 산속에 자신의 고향을 가지고 있다. 내게 첫 오름 짓을 알게 해준 노적봉은 내 마음 속에 각인된 모암(母岩)인 셈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지금도 노적봉을 즐겨 찾는다. 이날의 등반은 내게 내부에 깊숙이 숨어있던 능력을 발견하게 했으며, 세상에 태어나서 나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놀이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내 인생에서 산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오름 짓에 대한 본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걸음마를 배울 무렵 아이들은 문지방이나 창문, 책상이나 벽을 기어오르기를 좋아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처음 맛본 암벽등반에서 그 같은 본능에 눈을 떴다.

서정 짙은 문장으로 등산의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전달하면서 등반행위를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프랑스의 저명한 알피니스트 가스통 레뷔파는 그의 역저 <암과 설> 에서 ‘기어오른다는 것은 하나의 본능이다. 기어오르는 즐거움, 발견하는 즐거움, 멀리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즐거움이야말로 어른들이 말하는 알피니즘(Alpinism)이 아닐까?’라고 했다.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는 삼청공원과 남산이었다. 삼청공원은 재동학교를 다녔기에 학교가 끝난 후 학우들과 어울려 곧잘 오르던 곳이며, 남산은 내가 살던 초동집 가까이에 있어 동네 친구들과 자주 올랐던 곳이다.

당시 남산에는 유독 벚나무가 많았으며 벚꽃나무 열매(버찌)가 익는 계절이면 우리는 누가 더 높이 오를 수 있는지 내기를 할 정도였다. 당시 나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 많은 버찌를 따먹을 수 있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으니 아마도 기어오르는 재능은 이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첫 바위에 대한 추억은 공포보다는 무엇인가 표현 할 수 없는 가슴 짜릿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맛보게 하였으며, 이때부터 나는 암벽등반이라는 마약의 세계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진로가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한 것은 산을 알고 나서부터였으며 이것이 내 인생 후반기에는 등산이 전공과목처럼 되어 버렸으니 이렇게 시작한 등산은 이제 40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암벽등반만이 알피니즘인양 착각하던 내 젊은 날의 자화상은 산으로 인해 맛이 간 암벽등반 중독자의 모습이었다.

▲ 이용대 프로필

-1937년 서울 출생

-북한산 인수봉 궁형길 및 동양길 개척

-설악산 장군봉 남서벽 6개 루트 개척

-카라코람 히말라야 드리피카 및 네이저 피크 등반

-한국산서회 부회장

-한국산악회 종신회원

-코오롱등산학교 교장(현)

-저서 <등산교실>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 공저 <한국 산악회 50년사> <즐거운 암릉길> 등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