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종전선언 시기와 주체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당초 종전선언은 한반도 비핵화 완성 단계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한미 간 공감대가 있었으나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3, 4자 정상회담 추진을 담은 10ㆍ4정상선언 이후 분위기가 달라진 양상이다.
청와대는 7일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 종전선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고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같은 날 "종전선언은 평화 체제 협상 개시선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측의 이 같은 기류는 종전선언을 '회색지대(Grey Zone)'에 두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핵화의 조속한 진전이나 핵 폐기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북한의 핵 폐기 의지를 완전히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도 종전선언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우리 측은 후자에 무게 중심을 두고 북한의 핵 신고ㆍ불능화 수준과 이행 정도, 또 6자 외교장관 회담 때 핵 폐기 로드맵의 합의 여부에 따라 종전선언도 조기에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애드벌룬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종전선언 시기를 비핵화 완성단계라는 먼 미래에서 가시권으로 끌어오려는 참여정부의 의지 반(半), 기대 반인 것이다.
그러나 종전선언이든, 평화 체제 협상개시 선언이든 사실상 핵 동결의 연장에 불과한 불능화 단계에 관련 당사국 정상들이 모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핵심 당사국인 미국은 더욱 그렇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8일 "종전선언의 선결 조건은 북한 핵무기 및 핵 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폐기"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도 이날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정상들이 모여서 평화 체제 협상 개시선언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관련 당사국 외교장관들이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북핵 협상과 평화 체제 협의를 책임진 천 본부장의 발언은 한미 간의 조율을 거쳐 정부 내 논란을 일단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화 체제의 첫 삽을 뜨려는 참여정부의 의지가 강한 만큼 신고ㆍ불능화 이행과 핵 폐기협상의 순항 여부에 따라 종전선언 시기는 계속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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