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낮 평양 백화원 영빈관. 2007남북정상선언(합의문)이 발표된 직후 노무현 대통령 일행을 환송하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련한 오찬 장소. 앞 테이블에 있던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이 건배를 제의하며 남북 정상에게 다가갔다.
● 올림픽단일팀 합의될 뻔 했는데
(김 회장이 노 대통령에게)"합의문에 베이징올림픽 단일팀 부분이 빠졌더군요. 그것을 전제로 공동응원단이 합의된 것 아닙니까" (노 대통령이 김 회장에게)"들어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김 회장이 노 대통령에게)"아무리 봐도 없습니다" (김 회장이 김 위원장에게)"단일팀 문제는…" (김 위원장이)"아니, 응원단만 합의됐습니다.
남한은 올림픽도 해 봐서 기량 차이도 나고, 단일팀이 어렵다고 해서 그랬습니다" (김 회장이 김 위원장에게)"어려운 것 없습니다. 한두 가지 빼고 다 합의됐습니다.
위원장께서 지시만 하면 바로 됩니다"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성사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북한팀 선수들을 좀더 많이 넣어 드릴 테니 단일팀 하는 것으로 합시다"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과 김 회장에게)"스포츠에 정치가 개입되면 복잡해집니다. 허허, 그 문제는 체육인들에게 맡겨 둡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스포츠 교류와 관련, 우리측은 3가지를 제의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 구성, 옛 경평(京平)축구 형태의 한민족평화대체전 개최, 올림픽 성화 봉송 때 서울~평양~백두산 경유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단일팀 문제였지만 합의문엔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남북 응원단이 경의선 열차 함께 탑승'이 전부였다. 적지 않은 정치ㆍ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과 평양을 격년으로 오가며 열리게 될 평화대체전은 양측 모두가 즐기는 종목 10개 정도를 정해 문화행사와 함께 개최하자는 것인데, 이번 회담에서 '잘 해보자'는 쪽으로 사실상 합의가 됐다.
역대 올림픽 개최지를 순회하는 성화 봉송도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는 우리측 설명에 북측도 '그렇게 된다면 나쁠 이유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단일팀 문제에서 양측의 이해가 대립했다. 정상회담 기간 4차례 실무회담에서 원칙은 물론, 깃발은 한반도기, 명칭은 코리아, 노래는 아리랑으로 세부 사안도 합의했다.
또 단체경기는 공동팀을 구성하고, 개별 경기는 예선 형태의 선발과정을 거치자는 데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축구 야구 농구 등 7개 단체구기 종목이 문제였다.
우리는 기량이 우수한 선수로 팀을 구성하자고 했으나, 북측은 50대 50의 동수(同數)를 요구했다. 노 대통령이 마지막에 "북한팀 선수들을 좀더 많이 넣어 드릴 테니"라고까지 양보했으나 김 위원장은 "허허"로 얼버무렸다.
분단국가가 올림픽에 단일팀을 내보낼 경우 힘을 합쳐 메달을 더 많이 따자는 게 목적이 아니다. 독일이 통일 이전에 3차례나 단일팀으로 출전했으나 서독과 동독으로 따로 참가해 따낸 메달을 합친 것보다 결코 많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깃발을 새로 만들고, '합창(베토벤 교향곡 9번)'을 국가로 사용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부러워했다. 처음엔 동ㆍ서독 선수가 비슷한 비율로 참가했으나 독일민족의 승리를 원하는 여론이 베를린 양쪽에서 일었고, 나중에는 저절로 기량이 우수한 서독측 선수가 단일팀의 대부분을 차지했는데도 동독 국민들도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 메달 수나 랭킹이 그리 중요한가
올림픽이 순수한 스포츠 제전임을 무시할 순 없으나,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가 올림픽을 좀 이용(?)한들 어떤가.
대한체육회가 우리와 북한의 메달 수를 단순히 합산하면서 단일팀으로 나가면 세계 6~7위가 된다느니, 일본을 꺾을 수 있다느니 하는 계산을 하고 있다면 안목이 너무 짧고 좁다.
"체육인들에게 맡겨 둡시다"해서 조만간 남북 체육인들의 실무협상이 시작될 예정이다. 남한 선수들에게 미안한 얘기일 수 있으나, 올림픽단일팀을 위해서 스포츠 강국인 우리가 북한에 좀 '퍼주면' 어떤가.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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