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영(11ㆍ여ㆍ가명)이는 요즘 밤마다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울다 지쳐 잠든다. 학교 친구들이 “엄마, 아빠도 없는 애”라고 놀리기 때문이다. 가영이는 5년 전 엄마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이혼한 아빠마저 가출하자 광주에서 할머니(68), 여동생 나영(9ㆍ가명)이와 함께 살고 있다.
“며칠 전 가을소풍 갔던 가영이가 울면서 집에 들어오더라고. 그 날도 친구들이 놀려서 울었는데 선생님은 오히려 ‘할머니에게 고자질 할거냐’며 애를 야단쳤다는 거여. 내가 얼마 전에 가영이를 괴롭히는 친구들을 좀 나무랐거든. 그렇다고 세상에 선생님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던 할머니의 주름진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따돌림 받는 것도 서럽지만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게 더 걱정이다. 할머니의 수입원은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 60만원이 전부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고기 반찬을 해준 게 언제인 지 기억조차 없다”며 “목 디스크에 피부병까지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데다 생활비도 부족해 김치와 간장만 먹고 산다”고 말했다.
조손가정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조손가정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가족 형태로 자리잡은 지 오래지만 정부는 법적 지원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팔장만 끼고 있다.
전남 해남에서 손자 성철(16)군을 홀로 키우며 사는 김모(68) 할머니의 한 달 생활비는 50만원 남짓. 당뇨병 때문에 힘에 부치지만 손자를 키워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동네 식당에서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이다. 할머니는 “이혼하고 집 나간 아들은 4년째 소식이 없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주민등록상 부양의무자로 돼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이들 교육 문제는 대부분의 조손가정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다. 아이 양육조차 힘에 부쳐하는 고령의 조부모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버지 사업 실패 후 여덟살 때부터 충남 홍성에서 할머니(73)와 살고 있는 영철(11ㆍ가명)이는 학교 가는 날 보다 가지 않는 날이 더 많다.
노환으로 쓰러진 할머니와 여동생(8)까지 돌보다 보니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영철이가 자꾸 학교를 그만 두고 돈을 벌겠다고 할 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이라며 “어디 공부 좀 가르쳐줄 곳이 없냐”고 눈물을 글썽였다.
일선 교육청은 방과후 수업 수강료 지원을 통해 조손가정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 전남지부 관계자는 “조손가정 등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학습 지원 사업이 방과후 수업료 지원 방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다”며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돈으로 체험학습을 시키거나 급식을 해 주는 게 낫다”고 꼬집었다.
또 법의 맹점 때문에 주민등록상 부모가 존재하면 사실상 조부모가 양육하는 경우라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9월에 국회에서 통과돼 내년 시행될 예정인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르면 부모가 사망하거나 생사가 불분명하고, 노동력을 상실했거나 장기 복역자이면서 저소득 대상자인 경우에만 지원된다.
조손가정은 또 가족 구성원간 세대차이에서 오는 정서적 갈등으로 인해 또 다시 가족해체로 이어지는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5월 부산에서는 부모 이혼 후 할머니와 함께 살던 최모(15)군이 “왜 가출을 하느냐”며 꾸짖는 할머니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조손가정 내 강력사건도 잇따르고 잇다. 하지만 조손가정의 내부 갈등 해소를 위한 정기적인 조부모 교육이나 아동 상담 프로그램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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