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통일 17주년을 맞은 독일 경제는 회복 국면을 넘어 재도약을 위한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동안 발목을 잡아온 통일 후유증을 상당부분 해소하면서 화학 기계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첨단분야의 동력이 강화됨은 물론, 기업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일어나면서 경기 회복세가 완연하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4일 독일 경제 회생의 선두기업인 세계적인 화학 회사 바스프(BASF)의 위르겐 함브레히트 회장을 만나 그가 느낀 통독 경험과 한국 기업들이 가져야 할 남북경협 자세에 대해 들어 보았다.
독일 경제 아ㆍ태회의(APK) 회장 자격으로 한국에서 열린 제11차 독일경제 아ㆍ태회의를 위해 방한한 함브레히트 회장은 “내년 독일 연방 예산안은 통독 이후 17년 만에 처음 부채가 없는 균형 있는 예산으로 편성됐다”면서 “그 만큼 독일 통일은 어려운 극복 과제였고 이제 독일은 심각했던 후유증에서 겨우 벗어나고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독 당시만해도 독일 통일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었다”며 “금방 그 무엇도 회생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바스프는 동독지역에서 최고로 꼽히는 화학단지를 매입했지만 글로벌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이 서 과감하게 단지를 모두 부숴버리고 새롭게 다시 지었다”고 설명했다. 바스프가 기업의 이익만을 생각했다면 동독지역에 투자할 꿈도 꾸지 않았겠지만 통일이 주는 그 이상의 가치가 눈앞의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함브레히트 회장은 “물론 이 같은 투자 결정은 짧은 시간에 소득을 가져오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동독지역의 바스프 화학단지는 체코와 폴란드 등 동구권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한 이들 지역에 대한 수출 첨병기지 역할을 해내면서 결국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도 북한에 대한 투자를 통해 당장 이윤을 얻어내겠다는 기대감은 접고 언젠가는 그런 상황이 올 것이라는 믿음 속에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지역은 중국과 인접해 있어 입지 선정만 잘 한다면 장기적으로 훌륭한 투자지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바스프는 통독 17년 간의 경제 침체기에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나갈 수 있었을까. 함브레히트 회장은 이에 대해 “바스프는 경기 침체기에 글로벌 흐름에 맞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새로운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며 “그것은 경영진의 몫”이라고 말했다.
바스프는 우선 내부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의 일대 혁신을 단행했다. 수익성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수익성 있는 분야에 투자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석유정제사업과 제약 등 130억 유로 규모의 기존 사업을 매각했고, 건설화학 자동차 촉매제 등 110억 유로 규모의 새로운 사업을 인수했다. 그는 “사업 포트폴리오 수정은 앞으로도 계속 이뤄질 것”이라며 “새 사업 영역이 우리의 관심대상이 될 지는 그때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브레히트 회장은 중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산업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화학기업의 경우 앞으로 15~20년 내에 모든 성장의 50% 이상이 아시아지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 바스프의 경우 근로자들의 교육 수준이 높고 근면하며 규율을 잘 지킨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투자에 있어서 큰 걸림돌은 없으며 관료주의 문제야 독일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독일의 경제구조 차이에 대해 그는 한국의 경우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체는 많은데 중견기업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한국이 미국 표준에 따라가고 있는데 유럽이 훨씬 더 큰 시장임을 감안할 때 유럽 표준을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 위르겐 함브레히트 바스프(BASF) 그룹 회장 약력
-1946년 독일 뢰틀링엔 출생
-1975년 독일 튀빙엔 대학 화학 전공 및 유기화학 박사
-1976년 바스프 폴리머 연구소 입사
-1996년 동아시아 지역 사장
-2003년 최고경영위원회 회장
-2003년 대한민국 수교훈장 숭례장 서훈
-현재 독일경제 아태위원회(APA) 회장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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