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순정 연애소설인가요?”
대학 1학년의 첫 미팅자리,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어냐는 질문에 <코스모스> 라고 했더니, 자신도 꼭 읽어보겠다는 말과 함께 날라온 답변이었다. 나는 몹시 의아해지고 말았다. 코스모스>
내가 그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은테안경을 쓰기 시작하던 중학 2학년 시절이었다. 장래희망을 건축가라고 일찌감치 정해놓고서 이제는 책도 소설이 아닌 자연과학서적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어 든 책, 당시 TV 교양프로그램으로 한창 유명세를 타던 우주과학자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리 만만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반은 겉멋으로 반은 오기로 뜻도 모른 채 무작정 읽어 내었고, 5년 뒤 대학에 입학해 다시 읽으며 밀려오는 감동을 그대로 간직한 채 첫 미팅에 나간 터였다. 열다섯 살 때 읽기 어려웠던 책을 스무 살이 되어 다시 읽는 것은, 일곱 살이던 아사코를 스무 살이 되어 다시 만났던 피천득 선생의 ‘인연’만큼이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코스모스> 는 TV 교양프로그램을 책으로 재구성한 것이어서 화려한 사진과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구성이 특징이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이 돋보이는 책이다. 우주의 기원과 생성을 이야기하며 고대 그리스 학자들이 천체를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슬쩍 끼워 넣으며, 은하수(Milky way)를 설명하며 그리스 신화를 인용한다. 코스모스>
그 때 나는 천체우주물리학이라는 생소한 과학도 때로는 인문학의 한 분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으며,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은연 중 내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는 지금 건축을 공학이 아닌, 인문학적 사회학적 시선으로 다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꽃집에 코스모스가 없더라구요. 대신 장미를 준비했는데, 어떠세요?” 찻집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어디론가 후닥닥 뛰어갔다가 돌아온 남자의 손에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꽃다발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지만, 코스모스는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서윤영ㆍ건축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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