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평양은 차분했다.
평양 시내에 환영 나온 수십만의 인파가 분홍색 조화를 들고 눈물을 흘리며 환영하는 모습은 7년 전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는 노무현 대통령 일행과 함께 TV카메라가 스쳐 지나갈 때 뿐이었다. 일행이 지나가면 ‘만세’ 소리는 금세 잦아들었다. 방북기간 기자들과 함께 한 북측 안내원은 “아무래도 1차 회담 때에 비해 분위기가 좀 덜하죠. 남측은 안 그렇습네까”라고 묻기도 했다.
거리나 학교, 그리고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만난 평양 시민들도 대체로 무덤덤했다. 김책공대의 한 학생은 “이번 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순식간에 뭐가 이뤄지고, 기러기야 하겠습네까”라고 답했다.
또 북측의 다른 안내원은 “내용이 중요하지 모양새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네까“라며 “정상간 합의 내용을 봐야죠. 뭐가 나오는지를 봐야 흥분할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지 않겠습네까”라고 말했다. 맹목적이고 감성적인 모습에서 실용적이고 이성적으로 바뀌고 있는 북측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4일 정상회담의 선언문이 나온 뒤 한 안내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보다 남측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죠. 미국이 어떻게 나올 지 궁금하다. 지금은 미국이 콱 틀어막고 우리나라 발전을 못하게 해놔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동안 남북교류가 여러 분야에서 진행된 이유에서인지 남측 인사들을 대하는 북측 사람들의 태도는 상당히 유연했다. 우리가 더 이상 신기하고 궁금한 대상은 아닌 듯 했다. 1차 회담 때는 남측이 주는 개인적인 선물도 받지않고 호텔 봉사료도 받지 않았다지만 이번에는 ‘호의’로 받아들였다.
호텔 앞을 지나가는 주민들은 태극기와 보도완장을 착용한 기자들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전보다 좀 늙어 보인다”라는 말에 북측의 “7년이 지났잖습니까”라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불경한 발언’이라며 펄쩍 뛰었을지도 모른다.
안내원들은 남측 기자에게 고민을 말하기도 하고, 남측의 상황도 듣고싶어 했다. 역시 이곳에서도 가장 큰 관심사는 자녀 교육문제였다.
한 안내원은 “자식들 공부가 아무래도 가장 중요하죠. 의사나 교수 등은 나라에서 지원이 많으니 지원자가 많습네다. 우리 애가 지원하고 싶은 분야의 지원자가 적어야 수월할텐데”라고 말했다.
40대의 여성 안내원은 “중학생인 아들이 컴퓨터를 좋아하고 또 잘 해서 이쪽으로 공부시킬 생각”이라며 “김책 공대에 들어가면 좋고, 그래서 나중에 교수가 되면 좋고…”라고 말했다. 다른 여성 안내원은 반대로 “아들이 컴퓨터에만 빠져 있어 걱정”이라고도 했다.
평양의 거리 풍경은 한마디로 한산했다. 차량들은 대부분 오래된 일제 차량이었다. 오가는 차량이 많지않아 여성 교통보안원의 수신호에 따라 통행이 이뤄져도 도로가 막히지 않았다.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양장이었고, 미니에 가까운 제법 짧은 스커트에 부츠를 착용한 이들도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전차식 버스로 대부분 통근을 했다. 이층버스도 간혹 보였고, 차량 지붕에 마크를 단 택시도 드물게 있었다. 매연이 심했지만 차량 대수가 적어 공기는 좋은 편이었다.
거리의 상점들도 종류별로 구색은 갖추고 있었으나 손님은 많지 않았다. 양복점, 옷상점, 책방, 식당, 사진관, 상점, 잡화점, 약국, 술집, 청량음료집, 건자재점, TV수리점, 미용실, 아동백화점 등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중 미용실에 많은 손님이 북적였고, 군밤 군고구마 꼬치구이 등을 주문하고 포장해가는 ‘테이크 아웃’ 상점에 퇴근시간대에 사람들이 몰렸다. 공중전화부스에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평양이 많이 깨끗해지고 정돈됐다. 2000년에는 이렇지 않았다. 건물색칠도 많이 하고 가로등도 생겼다”고 말했다.
달라지지 않은 건 역시 체제 수호 분위기였다. <아리랑> 내용은 그 결정판이었다. 공연에는 연인원 10만여명의 학생들이 동원됐다. 집단 대체조라는 북측의 설명대로 장엄하고 서정적인 서사극이었다. 아리랑>
예술성이나 대대적 인원을 동원해 꾸민 공연의 화려함은 평가할만 했다. 하지만 카드섹션에서 매스게임에 이르기까지 단 한명의 실수도 없이 1시간 30분동안 그 많은 학생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집단화와 획일화를 강조하는 북 체제에 대한 섬뜩함도 느껴졌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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