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1위는? 유명한 화장품업체 CEO나 메이크업아티스트, 혹은 이영애나 전지현 같은 모델을 떠올릴 법 하지만 아니다.
비록 공식적으로 집계된 바 없으되 업계관계자들은 ‘강윤주’라는 이름을 서슴없이 첫손에 꼽는다. ‘닥터 윤주’라는 필명을 쓰는 강씨는 2001년 개설이래 등록회원만 5만명을 헤아리는 인기 카페 ‘닥터 윤주의 화장품나라’의 운영자이면서 내로라 하는 화장품 브랜드들이 앞 다퉈 시제품 평가를 의뢰하는 스타급 화장품 칼럼니스트다.
‘20만원짜리 영양크림을 사느니 그 돈 아껴 피부과에 가라’고 말하는 강단과 한 달이면 100가지 이상의 화장품을 직접 써보고 걸러낸 해박한 상품평이 신뢰의 기반. 최근 7년간의 카페활동을 총결산한 화장품 입문서 <화장품에 홀릭하다> 를 펴낸 강씨를 만났다. 화장품에>
■ “남녀 불문, 화장은 이제 일상이다”
강씨가 화장품과 연을 맺은 것은 대학교(숭실대 국문학과) 졸업 무렵. 용돈벌이 삼아 당시 태평양(현재 아모레퍼시픽)이 해외시장을 겨냥해 개발중이던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마케팅 아이디어 공모전에 참가했다 덜컥 대상을 받았다. 오래 간직한 초등학교 교사의 꿈도 멀어지던 차, 어쩌면 화장품과 특별한 인연이 있을 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때 마침 생전 처음 얼굴에 뾰루지가 나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화장품 정보를 찾는데 업체가 제공하는 과대광고는 넘쳐 나지만 정말 믿을만한 상품평은 없더라고요. 달마시안 개가 미백제품을 바르니 흰개가 됐다는 식의 광고가 나오던 때이니까요. 화장품이 생필품이 된 시대인데 소비자의 입장에서 진솔한 상품평을 해보자고 작정했죠.”
■ “화장품 엥겔지수 90, 취직 독촉에 시달렸다”
지금은 업체들이 닥터윤주의 ‘감(感)’을 마케팅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제품 출시 전 시제품을 미리 보내주지만 카페 초기만 해도 생활비중 화장품 구입비가 90%이상이었다. ‘최소 일주일은 직접 써본다’는 원칙을 따르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직업도 아닌 일에 시간과 돈을 다 써버리니 한심해 보일 밖에요. 화장품 리뷰는 취미생활로 하고 빨리 취직하라고 독촉이 심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화장품에 꽂힌 상태였어요. 아무도 내지 않은 길을 스스로 내려니 힘들뿐, 평생을 걸 가치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강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상품정보를 얻기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화장품업체와 잡지사 뷰티에디터 등 전문가 집단에서도 좀 더 깊숙한 정보를 원할 때 닥터윤주를 찾기 시작했다. 전문가가 찾는 전문가가 된 것. 지난해에는 아모레퍼시픽이 수분화장품 브랜드 라네즈와 라네즈옴므의 브랜드칼럼니스트로 강씨를 영입했다.
강씨가 순수하게 칼럼과 브랜드 자문을 통해 버는 돈만 연평균 6,000만원을 넘어선다. 대부분의 시판 화장품 시제품을 무료로 받아보지만 강씨의 영업범위(?)는 꽤 글로벌해서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해외 화장품 구매 등에 지금도 한달 평균 150만원 정도를 쓴다.
■ “초고가 화장품? 비싼 값 못한다”
화장품으로 먹고 살지만, 강씨의 상품평은 화장품과 화장문화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예를 들어 ‘20만원 이상 초고가 기초화장품은 쳐다볼 필요도 없다’고 단언하는 식이다.
“한 통에 수십만원 짜리 화장품을 사는 건 명백히 바보짓 입니다. 보통 2만원짜리 토너의 원가는 2,000원 정도로 10배 장사인데 초고가 화장품들은 이 배수가 훨씬 더 높아요. 기능은 별 차이 없으면서 브랜드 이미지 차원에서 제품 외적인 요인들, 예를 들면 용기나 포장, 광고 홍보 등을 통해 가격을 높여놓는 거죠.”
그럼에도 초고가 화장품들이 나오는 것은 한국 시장의 지나친 고가 선호 현상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수입브랜드를 보면 해외 판매가보다 국내 판매가가 최소 2,3배 이상 차이나요. 우리나라 보다 더 비싸게 파는 나라를 본 적이 없으니까요. 업체들은 표면적으로는 운송비 등 물류에 돈이 많이 든다고 이유를 대지만 실상은 ‘비싸야 잘 팔린다’는 학습효과 탓이죠. 만일, 초고가 화장품들이 비싼 값 하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봤다면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화장품은 화장품일 뿐 약이 아니라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강씨는 “효능을 자랑하기 위해 내세우는 각종 실험 데이터 역시 이해관계가 맞는 업체와 피부과가 협력해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믿지 말라”고 덧붙였다.
■ “화장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강씨는 국내 20,30대 여성들의 경우 화장품 남용 정도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화장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도 기본적으로 4,5가지의 기초화장품을 바르는 것은 돈도 많이 들지만 피부호흡을 가로막는 등 피부에도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다.
“간단히 말해 지성피부라면 세안 후 스킨과 아이크림을 바르고 자외선차단제만 바르면 충분해요. 그런데 대부분 여기에 로션과 영양크림을 추가하고 각종 안티에이징 미백 등 기능성 세럼까지 더하거든요. 화장품 업체는 좋아할 지 모르지만 피부는 숨쉬기 힘들어요.”
강씨가 화장품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의외로 자외선차단제이다.
“기본적으로 피부노화는 광노화예요. 자외선만 잘 차단해도 주름방지나 탄력강화 제품을 따로 바를 필요가 없으니 최고의 안티에이징 제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가능하면 사춘기부터 야외활동시 자외선차단제를 꼭 바르는 것이 좋습니다.”
■ “즐거운 중독, 화장품은 진화한다”
강씨는 가끔 어머니처럼 동동구리무로 만족하던 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화장품을 좋아한다. 스스로 ‘즐거운 중독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화장품은 감성적인 소비재이면서 첨단과학이 가장 일상적인 분야에 접목되는 분야입니다.신기술이 적용된 신제품들이 끊임없이 쏟아지죠. 그래서 늘 진행형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화장품의 매력입니다. 남녀 모두 없이 살 수 없다면 현명하게 즐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거기 일조하는 게 제 역할이라 더 없이 감사하죠.”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