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사고 체계는 이 배중률(排中律)을 따른다. 아니, 따르도록 강요받는다. 그것을 벗어나면 비정상, 비논리의 혐의를 받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종종 논리의 틀을 넘어선 곳에서 삶의 진면목을 펼쳐 놓는다. 그 모습을 목도하는 일은, 십중팔구 가슴에 돌덩이를 쌓는 일이 된다.
‘자이니치(在日)’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또는 조선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잉태되는 순간, 사회적 차별은 이미 탄생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모순을 안고 있기에 이들의 삶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11일 개봉하는 <박치기: 러브&피스> 는 그 처절한 몸부림을 일본인의 눈으로 바라본 영화다. 박치기:>
이야기는 전작 <박치기> (2005년)의 끝에서 6년이 흐른 뒤 다시 시작된다. 1960년대 말 교토에서 박치기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조선학교의 전설 리안성(이시카 ??야). 박치기>
성인이 된 그는 난치병에 걸린 아들을 보살피며 근근이 살아간다. 74년 도쿄의 거리, 그는 더 이상 폭주족 차림이 아니지만 세상은 그에게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안성은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현해탄 밀수선에 몸을 싣는다.
전편에서 일본인 남학생과 풋풋한 사랑을 나눴던 안성의 여동생 경자(나카무라 유리)도 어른이 됐다. 연예계에 발을 들인 그녀는 배우 자리를 따 내기 위해 늙수그레한 제작자의 침실을 찾아 간다.
최소한 이 거래에는 차별이 적용되지 않기에, 그녀의 표정은 그리 슬프지 않다. 입술을 꽉 깨문 경자의 턱에 선 힘줄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잡아 낸다.
전작이 재일동포 2세들의 응어리 진 삶을 청춘영화의 틀을 빌려 유쾌하게 담아 냈다면, 이 영화는 좀더 직설적으로 그들의 삶에 패인 굴곡을 들춰낸다.
때문에 목소리는 뚜렷해 졌지만, 해학적인 맛과 혈기왕성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B급 오락 활극을 연상케 하던 전작의 액션신도 안성의 아버지가 일본에 끌려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플래시백(과거 회상)으로 대체됐다. 스케일은 커졌지만, 하지만 한국인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들이라 무덤덤하다.
영화는 종반으로 갈수록 무겁고 둔탁한 분위기가 증폭된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부른 ‘임진강’과 ‘아리랑’의 과도한 삽입도 70, 80년대 전쟁영화 같은 신파적 감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재일 한국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일본인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개봉에 맞춰 방한한 이즈쓰 카즈유키 감독은 “일본 개봉 당시 반일영화로 찍혀 곤욕을 치르고 협박도 받았다”며 “일본에서 나고 자랐어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자이니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5세 관람가.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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