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조 지음 / 시학 발행ㆍ167쪽ㆍ1만원
‘어느 날 시가 쓰여진다/ 혈액처럼 고여오는/ 아니 혈액 자체인 그것을/ 원고지 위에 공손히 옮긴다/ 한데 야릇한 의문이 섞여 치받는다/ 더 오래/ 절망해야 옳지 않았을까’(‘시에게 잘못함’)
올해로 팔순을 맞은 김남조(사진) 시인은 여전히 치열하다. 60년 시력(詩歷) 동안 김씨는 인간적 고뇌와 휴머니즘을 깊은 신앙 체험을 통해 성스러움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사랑의 시인’ ‘기도의 시인’으로 사랑 받아왔다. 재작년 시집 15권을 통튼 전집을 출간했던 시인이 68편의 신작시를 담아 16번째 시집을 펴냈다.
시인은 자신을 ‘깃발’로 여긴다. ‘사람 마음의 다친 실핏줄들을/ 제 몸 실밭에 받아 감아’(‘하늘깃발’) 기운 깃발 곁으로 ‘지상의 독백들이/ 꽃씨처럼 날아올라/ 펄럭펄럭 함께 호흡’한다. (‘야영하는 깃발’) 뭇사람의 아픔(다친 실핏줄), 외로움(독백)에 공감하는 시는 ‘칼집에서 나온 칼처럼 시퍼런 것’(‘야영하는 깃발’)이자 ‘사람 하나가/ 벼르어진 칼날의 맑은 거울 속에 와서 있음을’(‘진검’) 보게 되는 유대의 공간이다.
늙음을 대하는 시선은 온유하다. ‘노약자, 이 이름도 나쁘진 않아/ …/ 무저항의 겸손한 이름이여/ 오스름 해 저물녘의/ 초생달빛이여/ 치수 헐렁하여 편한/ 오늘의 내 의복’(‘노약자’)이라고 노시인은 담담히 말한다.
자기 연민에 붙잡히지 않은 그의 마음은 언제나처럼 구완의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고통에게/ 절하며 부탁한다/ 그를 부드럽게 대해 달라고, 아니/ 착오로 방문했으니/ 어서 떠나 달라고’(‘쾌유를 위하여’). 간결해진 시어가 한층 웅숭깊어진 울림을 낸다. 고은 시인은 발문에서 “이 필생불변의 시인에게서는 사랑은 그냥 사랑 타령이 아니다. 그것은 고행이고 연단의 다른 이름”이라 썼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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