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은 남북이 평화 속에 공동 번영과 통일로 가는 길목에 세워진 중요한 이정표라 할 만하다.
2000년의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한 ‘6ㆍ15공동선언’이 평화와 공영의 총론이었다면 이번 선언은 그 기조 아래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각론적 방안들을 다수 담고 있다. 실천만 된다면 남북의 상생과 평화ㆍ번영을 앞당길 중요한 내용들이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아쉬움도 있고 앞으로 국민적 총의를 모아가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다 얻을 수는 없다. 대통령 임기 말에다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이뤄진 정상회담이었기에 논란도 많았고 한계도 분명했다.
그런 제약 속에 이 정도 성과를 얻어냈다면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흐름에 맞지 않는 돌출 합의나 해프닝등 우려했던 일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국민들을 안도하게 한 회담이었다.
■ 6자회담 합의문 타결도 큰 진전
남북정상회담 시기에 마침 6자회담에서 북핵 불능화 및 신고와 그에 대한 정치ㆍ경제적 상응조치 등을 담은 합의문이 타결되고 참가국 정부들이 이를 공식 승인했다. 아직 북핵의 완전폐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중대한 진전임엔 틀림없다. 이 시점에서 남북정상이 6자회담 합의 이행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선언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이 북핵 폐기를 강력히 촉구하고 김 위원장이 보다 분명하게 핵 폐기 의지를 표명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이번에 합의한 평화ㆍ번영 방안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남북 정상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6자회담의 진행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임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주변 4강국과 남북이 참가한 6자회담 틀을 통해 북한 핵 문제가 완전 해결되면 동북아 안보지형 재편이 불가피하다. 한반도 정전체제의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은 그 핵심이며 이 과정에서 남북은 직접 당사국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마땅하다.
남북 정상이 이런 인식을 함께 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선언을 하는 문제를 추진하는 데 협력하기로 한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이니셔티브를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남북 정상은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한 여러 가지 구체적 방안을 공동선언에 담았다. 그러나 평화 즉, 군사적 적대관계 경감과 긴장 완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남북경협 확대에는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6ㆍ15 공동선언 이후 남북이 경추위 등을 통해 적지 않은 합의를 했지만 군사적 보장 장치 등에 진전이 없어 실천에 옮겨지지 못했다. 긴장 완화와 평화 보장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한 것도 이런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특히 남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고, 이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과 관련한 군사보장조치 등 군사적 신뢰조치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민감한 서해북방한계선(NLL) 조정문제가 걸려 있어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로 설정하는 등 경협과 연계하는 방안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내달 평양서 열기로 한 국방장관회담에서 정상선언 정신을 반영한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 인식차와 상호 불신 해소가 과제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간에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인식차와 불신이 여전하다는 사실도 보여 주었다.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1차 회담을 마친 뒤 남측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선의로 얘기하지만 북측은 체제 흔들기나 흡수통일전략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상과 제도를 초월해 남북관계를 상호 존중과 신뢰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자고 강조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남과 북이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의 인권 보장 수준 등이 국제적 기준과 한참 거리가 있는 만큼, 필연적으로 내부간섭 논란을 일으킬 인권문제와 인도적 사안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지만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없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도 신뢰가 쌓이면 풀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약속한 것부터 양측이 함께 실천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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