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통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군사 대치 개념이 아니라 경제협력의 틀로 풀어간다는 데 공감했다.
2002년 서해교전 이후 남북간 긴장도가 가장 높은 이 지역을 ‘서해평화협력벨트’라는 남측 구상에 따라 화해와 협력의 바다로 만들어가는 단초를 마련한 셈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7년만에 11월 평양에서 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열기로 한 것도 군사문제 해결의 청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남북이 군사문제를 좋은 방향으로 풀어가기 위한 틀을 잡았다”고 평가했다.
■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설정
선언문은 제3항에서 남북 군사문제를 직접 언급하고 있다. 남북이 ‘군사적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며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한다는 원칙은 멀게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가까이는 2000년 6ㆍ15 공동선언의 정신과 같다.
주목할 것은 선언문 전반, 특히 제3항에서 그 동안 남측이 주장해온 구상이 ‘키워드’로 다수 반영됐다는 점이다. ‘평화번영’이나 ‘종전선언’ 등이 대표적이며, 제3항의 ‘평화수역’은 서해를 평화협력벨트로 탈바꿈시킨다는 남측의 구상이 압축된 말이다.
선언문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향후 국방장관 회담에서 논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2005년 남북 수산당국자회담에서 이 원칙에 합의했고, 이후 군사실무회담에서 논의하고 있는 서해 공동어로수역을 서둘러 확정하고, 공동어로가 정착되면 그 지역을 평화수역으로 전환한다는 방안이다.
남북정상회담 기획단은 초기 단계 공동어로수역 지정과 함께 한강 하구에서 연평도에 이르는 어로불가능지역은 일단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해주 직항로가 열리고 해주 지역에 경제특구가 개발되면 서해의 군사적 긴장 완화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해주항은 무역항이면서 북한 해군의 전진기지로 수십 척의 어뢰정과 사거리 20㎞의 해안포, 사거리 83~95㎞의 샘릿,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 등이 배치돼 있는 군사요충지다.
한 군사 전문가는 “해주항이 개방되면 서북 해역의 남북 군사력이 재배치될 수밖에 없다”며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NLL 논란 없이 평화수역 가능할까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북측이 NLL 재설정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올 들어 수차례 열린 군사실무회담에서 남북은 공동어로수역 문제를 다뤘다. 현재의 NLL을 기준으로 연평도~백령도 해상에 남북 동일 면적의 어로수역을 정하자는 남측 제안에 북측은 5개 좌표를 제시하며 NLL 이남 직경 1~2㎞ 범위의 수역을 만들자고 고집하고 있다.
북측 안은 수역 자체가 현재의 남측 해상에만 설정되는 것도 문제지만, 이 선을 이으면 지난해 5월 제4차 장성급 군사회담 이후 북측이 주장하고 있는 새로운 해상경계선이 되기 때문에 남측은 계속 거부해왔다.
따라서 남북 정상간 합의 정신을 반영해 군사당국자가 협상의 원칙을 바꾸기 전에는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한다는 선언만으로는 NLL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 군축 등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
군사문제 조항이 따로 없었던 ‘6ㆍ15 남북공동선언문’과 비교하면 이번 합의는 적잖은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 내 남북 감시초소 철폐 등 군비통제나 실질적인 군사력 감축에 관한 내용이 없는 것 등은 일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방장관 회담 정례화나 군사공동위원회(또는 군축공동위원회) 등 군사적 대결 해소를 위한 상설기구 설치 등의 합의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한국국방연구원 백승주 박사는 “공동선언문 중 특히 군사 부문에서는 당초 남측에서 준비한 제안들이 상당 부분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며 “정상회담 합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향후 총리 및 국방장관 회담에서 군사공동위 설치 등 더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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