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하다. 참으로 아득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취재기자로 평양을 갔다 온 지 벌써 7년이나 지났다. 그 때의 놀람과 감격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희미해졌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 등 위약(違約)으로 색이 바랬다. 그래도 가슴에 깊이 각인돼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바로 나를 에스코트했던 북한 안내원과 나눈 대화, 맞잡은 손의 감촉, 그리고 우정이라면 우정일 수 있는 그와의 교감이다.
눈가에 잔주름이 가득한 50대 후반의 그는 방북 이틀째인 6월14일 옥류관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마치고 테라스로 나오는 기자에게 겸연쩍은 표정으로 질문을 하나 던졌다. “리 선생, 교편을 잡고 있는 아들 하나, 대학 다니는 딸 하나 있는데…거 뭐냐, 앞으로 뭘 준비하면 좋겠소?”
대동강의 미려함에 온 신경을 뺏긴 터라 그의 질문은 잘 들리지 않았다.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남북 경협이 이루어지고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북일 수교가 이루어지는 때를 대비해 자기 자식들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얘기였다.
언뜻 떠오른 답을 하나 줬다. “영어를 공부하라”고. “북한이 개방되면 대외거래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런 일을 하는데 국제공용어인 영어는 꼭 필요하다. 영어만 잘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새 흐름을 접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부연설명도 해줬다.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에 그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정말이지 아련한 눈빛으로 “고맙소, 리 선생, 고맙소”라고 거듭 사의를 표했다.
7년이 지나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오늘 그는 어디 있을까. 그가 어디 있든 간에 아마도 그의 가슴에는 더 이상 감격과 기대감은 없을 것이다. 그 긴 세월동안 북미관계 개선도, 북일 수교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그는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나의 말을 쓸데없는 객담으로 치부하고 있을 것이다.
세월의 허송을 따지자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백악관 주변의 매파에도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고 김일성 주석의 비핵화 유훈을 통 크게 이행하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4ㆍ25 문화회관에서 노 대통령을 깜짝 영접했다. 그러나 ‘쇼’는 한 번으로 족하다. 2000년 순안공항에서 예고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영접,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사건은 그 때로 끝났다. 지금은 ‘쇼’가 아닌 내용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때다.
2000년 당시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정상회담 후기를 이렇게 썼다. “북한이 설령 정치적 쇼를 했다 할 지라도 그 쇼는 엄연한 현실이었고, 나아가 진짜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이제 그 글을 수정하려 한다. 쇼를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 몫은 김 위원장에 달려있다고 말이다. 김 위원장은 핵 게임으로 세계를 흔들었다고 자부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시간을 잃고 있다.
이제 쇼를 접고 내용을 채워보자. 그래서 더 이상 시간을 잃지 말고 개성이나 평양을 천지개벽한 푸동이나 하노이처럼 만들어보자. 그래야 기자도 자식들에게 영어를 공부하라고 했을 북한 안내원에 면목이 서지 않겠는가.
이영성 부국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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