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빨간색 조화를 흔들며 광장을 가득 메운 평양 시민들. 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붉은 카펫에서 남한 정상의 도착을 기다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리고 광장에 일렬로 도열해있는 당ㆍ군ㆍ정을 망라한 북한 유력 인사들까지. 장소만 평양 순안공항에서 평양 모란봉 입구 4ㆍ25 문화회관 광장으로 바뀌었을 뿐, 2007년 10월 남북 두 정상의 첫 만남의 순간은 2000년 6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7년 전의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곧 이어 펼쳐질 장면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러나 이후의 장면들은 7년 전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김 위원장은 오전 11시 55분 4ㆍ25문화회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5분 후인 낮 12시께 노 대통령을 실은 무개차가 도착했고, 노 대통령은 천천히 차에서 내려 천천히 10m 정도를 걸어가 김 위원장과 악수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손을 맞잡은 역사적 순간이었지만 김 위원장의 표정은 담담함을 넘어 무표정에 가까웠다. 7년 전의 뜨거운 포옹도 없었다. 손을 맞잡은 두 정상은 서로 "반갑습니다"라는 간단한 인사만을 교환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권양숙 여사와도 악수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손짓으로 붉은 카펫으로 안내했고, 둘은 한동안 나란히 카펫을 밟았다. 그러나 둘 사이는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처럼 일정한 거리가 유지됐고, 대화도 없었다. 시선도 별로 마주치지 않았다.
노 대통령만 간간이 주위를 살피며 평양 시민들의 환호에 답할 뿐이었다. 7년 전 밝은 표정으로 날씨 이야기를 먼저 건네고, 김 대통령과 함께 환영객 주변을 돌면서 박수를 유도하던 김 위원장의 활기찬 모습은 이날 어딘지 불편해 보이고 경직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어 두 정상은 북한 육ㆍ해ㆍ공 의장대의 사열을 받은 후 노 대통령은 도열해 있던 북측 고위 인사들과, 김 위원장은 남측 공식 수행원들과 각각 인사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대북 특사로 방북 했던 김만복 국정원장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등 친근함을 보이기도 했지만 행사 내내 웃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노 대통령의 표정도 다소 굳은 듯 했다. 그러나 북측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다소 펴졌고, 북측 여성들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높이 들어 평양 시민들의 환영 함성 소리에 화답했다.
행사가 끝난 후 두 정상은 노 대통령 전용 차량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2000년 정상회담 때처럼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의 차량에 동승해 백화원 영빈관으로 가는 길에 환담을 나눌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그러나 차에 오른 것은 노 대통령 내외 뿐이었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 차가 출발하자 평양 시민들에게 간단히 답례하고 곧 이어 도착한 자신의 차량에 올랐다. 그리고는 노 대통령 차량이 퇴장한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환영식에 이어 두 정상의 첫 환담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있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2000년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은 공항 영접에서부터 차량 동승, 백화원 회담에 이르기까지 2시간 동안 김 위원장은 시종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김 전 대통령에게 예우를 차리며 당당하고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7년 만에 이뤄진 2차 정상회담 첫날 두 정상의 첫 만남은 이렇게 12분만에 끝났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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