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차별 시정을 신청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차별시정위원회의 차별 심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계약 만료를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가 “차별 시정을 신청한 것에 대한 회사 측의 보복성 인사”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서 비정규직법의 핵심인 차별 시정 제도의 실효성 문제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2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따르면 경북 고령축산물 공판장의 비정규직 근로자 이모(39)씨는 공판장 측으로부터 16일자로 고용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는 7월 24일 공판장의 비정규직 동료 18명과 함께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고도 연봉 등 근로조건에서 정규직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며 공판장 책임자를 상대로 경북지노위에 차별시정 신청서를 냈다.
이씨의 해고 사실이 알려지자 노동계는 “비정규직법의 차별 시정 제도가 갖고 있는 맹점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행 비정규직법에 따르면 차별 시정 신청권은 비정규직 근로자 개인에게만 있다. 노동조합 등 노동자 조직은 신청할 자격이 없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비정규직 근로자 개인이 회사를 그만 둘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신분을 그래도 드러내면서 사측을 상대로 차별 시정을 요구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며 차별 시정 신청권을 노조에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이씨는 6년 동안 공판장에서 도축 업무를 했고, 고용 계약도 매년 자동으로 갱신됐다”며 “그런데도 공판장 측이 고용계약 기간 만료를 이유로 이씨를 갑자기 해고한 것은 차별 시정 신청을 한데 대한 보복”이라고 비난했다.
회사가 차별 시정 신청 절차를 밟고 있는 근로자를 해고하는 편법을 써도 해당 근로자는 아무런 대응 수단이 없다는 것도 차별 시정 제도의 허점으로 지적된다.
보복성 해고를 당했다고 판단한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매년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됐더라도 회사가 “계약기간 만료로 해고했다”고 주장하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실제 노동부는 이번 이씨의 해고에 대해 “계약기간 만료로 인한 해고이므로 보복성 인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공판장 측이 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는 등 최종 판정을 최대한 늦춘 뒤 이 기간에 계약 만료가 돌아오는 차별시정 신청자들에게 ‘괘씸죄’를 적용해 차례로 해고해도 근로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고령축산물 공판장의 차별 시정 심의가 2, 3개월만 늦춰져도 차별 시정 신청 근로자 중 5,6명이 계약 만료로 일자리를 위협 받게 된다.
이날 현재 14개 사업장에서 137명이 각 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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