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55ㆍ사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빅토르 주브코프를 총리로 지명할 때만 해도 서방세계는 이 같은 깜짝 인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자신에게 충실한 관료를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운 뒤 퇴임 후 국영기업 사장 등을 하면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다 4년 뒤 다시 대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 뿐이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주브코프 총리 지명의 의미는 그 스스로 총선 출마 카드를 던지면서 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56세 생일을 1주일 앞두고 권력을 놓지 않으면서 합법적으로 대권을 다시 차지할 수 있는 ‘우회도로’를 전격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 8차 당대회에 참석, “당의 후보자 명단 맨 위에서 이끌어달라는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겠다”면서 12월 2일 치러지는 총선에 출마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총리 취임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부를 이끈다는 것은 상당히 현실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 취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통합러시아당이 총선에서 승리해야 하고 두 번째로 “나와 함께 팀으로 일할 만큼 훌륭한 인격을 갖춘 능력 있는 차기 대통령이 당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이 두 가지 조건 모두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보도했다. 2001년 4월 창당된 집권여당 통합러시아당은 12월 총선에서 두마 450석의 절반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도 80%나 된다.
66세의 주브코프는 푸틴보다 나이가 많고 정치가로서 경력은 거의 없는 충성심 강한 관료 출신이어서 푸틴이 총리로서 대통령을 압도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음 대권을 놓고 경쟁하던 세르게이 이바노프, 드미트리 메드페데프 등 두 명의 제1부총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더 타임스는 이들 중 이바노프는 푸틴의 그늘 밑에 계속 남아 있겠지만, 메드페데프는 가즈프롬 사장 등을 맡으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했다.
관건은 ‘푸틴 총리’의 다음 행보다. 더 타임스는 푸틴이 총리가 된 후 4년 뒤인 2012년에 다시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나이가 많은 주브코프가 4년도 채우지 않고 ‘건강상의 이유’ 등을 대며 갑작스럽게 물러난 뒤 조기 대선을 치를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총리가 된 후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총리의 권한을 대폭 늘리는 식으로 개헌을 실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치 분석가 알렉세이 무킨은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총리가 된 후 대통령과 맞먹는 수준으로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는 식으로 법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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