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이번에도 반복될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지만, 우리에겐 늘 아슬아슬한 변수가 있다. '북한'이다. 대북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폭발력이 강하니, 경제 분야도 여기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 경제가 북한 변수와는 한 발짝 떨어져 움직여왔음을 보여준다. 종종 상식을 벗어난 반응을 보여온 경제의 압축판, 주식시장의 궤적을 좇아 '온고지신'(溫故知新) 해보자.
오르던 내리던 단기 영향에 그쳐
국내 증시는 대북 관계의 진전에 '청개구리'식 반응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북한발(發) 호재가 주가를 떨어뜨리고, 악재가 되려 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이 반복됐다.
먼저 2000년 1차 정상회담을 보자.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는 메가톤급 뉴스가 알려진 그해 4월 10일, 종합주가지수(코스피)는 3.9% 급등했다. 호재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후 한달 동안 코스피는 9.1%나 떨어진다. 당시 정보기술(IT) 거품 붕괴와 현대, 대우 등 대기업의 유동성 위기 등 국내ㆍ외 전반적인 경기 하락세에 정상회담 재료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한 탓이었다.
특히 정상회담이 시작된 6월 13일엔 주가가 4.9%나 폭락했다. 그 동안의 기대감이 막상 실현되자 '더 이상 볼 게 없다'는 심리가 투매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연초 1,000포인트 위에서 시작했던 2000년 주가는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무색케 하며 연말 500선까지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터졌던 2006년 핵실험 파문 때는 어땠을까. 북한이 핵실험 계획을 발표한 10월 4일과 핵실험을 강행한 10월 9일 코스피는 각각 1.6%, 2.4% 떨어졌다. 하지만 9일 이후 한달 간 코스피는 6.1%나 올랐다.
발표 전까지 '팔자'세를 지속하던 외국인은 발표일과 실험일 각각 1,000억원, 4,740억원을 순매수하며 이후 '사자'세로 돌아섰다. 위기 때가 저가매수의 기회라는 접근이었다.
이후 주식시장은 핵전쟁의 공포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올랐다. 2006년 중반부터 시작된 글로벌 증시의 동반 상승세가 핵실험 재료를 가볍게 누른 셈이었다.
정상회담의 경제학
결국 주가 향방의 열쇠는 경제상황이 좌우한다는 역사의 교훈대로라면, 이번 정상회담 후 주가는 오름세를 보여야 맞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딛고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정도로 급등한 코스피 역시 이런 경제 분위기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일단 역사는 '반복'된 셈이다.
그렇다고 이번 정상회담이 '대세'에 휩쓸릴 무의미한 재료라는 뜻은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을 개방으로 이끄는 한 과정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에 큰 호재임이 분명하다.
삼성증권 안태강 연구원은 이번 회담의 경제적 의미를 ▦정치적 리스크 축소를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남북 경제협력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경제효과 ▦북한 개방에 따른 통일비용 감소 등으로 정리했다.
안 연구원은 "당장의 통일비용 증가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를 자극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개방화는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호재임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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