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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인간과 평화를 위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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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인간과 평화를 위한 발걸음

입력
2007.10.0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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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오늘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루지 못한 육로 방북이다. 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다.

역사적 이벤트의 감격에 발걸음이 떨리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의 방북 행보를 저마다 다른 심정으로 지켜볼 국민도 이 장면에 가장 순수한 감회를 느낄 듯 하다.

● 상징성 누리기 어려운 상황

1970년 3월, 분단이후 첫 정상회담을 위해 동독 방문 길에 오른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는 특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그는 철로 연변 동독 주민들이 건물 창가에 몰려 경찰의 제지를 무릅쓰고 환호하는 것에 "평생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들이 한 민족이고, 화해를 반기는 것을 확인하면서 몸이 떨리는 감동과 책임감을 함께 느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방북이 브란트나 김 대통령의 역사적 행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 오랜 적대와 대치의 장벽을 넘어 화해와 협력의 길을 개척한 것에 비하면 조촐한 의미를 지닌다.

보수세력의 악의적 폄훼는 무시하더라도, 7년 공백을 메우는 데 가장 큰 의미를 둘 만하다. 원래 적대국 사이의 정상회담은 실질보다 상징성이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물론 노 대통령은 상징성조차 제대로 누리기 어려운 처지다. 김 전 대통령처럼 오랜 평화 노력으로 국제적 명망을 쌓지 못한데다, 국정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임기마저 얼마남지 않은 형편에 안팎의 감동을 기대하기 힘들다. 온갖 구상을 회담 의제로 거론하며 고심한 연유일 것이다. '2차 정상회담'을 굳이 '2007 남북정상회담'으로 바꿔 부른 어색함도 그리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제 논란은 생각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보수세력이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고 외치는 김정일 위원장의 북핵 폐기 약속은 사실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선언과 6ㆍ15 공동선언, 6자 회담 틀의 북ㆍ미 및 6자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다시 천명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뭐라 다짐하든 구체적 이행과 궁극적 비핵화는 북ㆍ미 중심의 6자 협상 틀에서 해결할 일이다. 따라서 핵 폐기를 전제하지 않은 어떤 남북 합의도 용납할 수 없다고 으르는 것은 오히려 공허하다.

진보세력이 부르짖는 평화체제 구축도 마찬가지다. 종전 선언과 평화조약 체결 등의 한반도 평화체제는 핵 폐기와 군사 대치 종식, 북ㆍ미 관계정상화 등의 길고 험난한 과정을 지나야 비로소 실현된다. 따라서 남북 정상의 '평화선언'은 한반도 안보 현실과 무관한 상징적 선언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그나마 독자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것은 군사적 긴장완화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변경을 어설프게 떠드는 바람에 보수여론의 경계심을 지레 자극했지만, NLL 주변 공동어로수역 설정과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철수 등 육지와 바다의 무력대치 공간을 '평화지대'로 바꾸는 구상은 분명 바람직하다.

"NLL을 포기하면 수도권이 위태롭다"는 황당한 논리를 펴는 이들은 "휴전선까지 무방비로 두자는 거냐"고 짐짓 경악할 것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력대치를 완화하고 충돌위험을 줄이는 첫 걸음은 사정거리 밖으로 조금씩 물러서는 것이다. 이는 심지어 적대하는 개인들이 화해를 추구하는 데도 타당한 지혜다.

● 국민의 심정적 신뢰 얻어야

이런 긴장완화 합의도 정작 실행하기는 어렵다. 첨단 전력이 뒤지는 북한군이 꺼릴 것도 문제지만, 우리 자신의 방비는 한치도 늦춰서는 안 된다면서 북한에는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완고한 안보의식이 넘기 힘든 장애다.

노 대통령이 보수여론을 설득하려면 평화 명분과 상징에 도취해 들뜬 행보를 보이기보다,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에서 김 위원장의 양보를 적극 이끌어내 함께 국민의 심정적ㆍ인간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브란트는 역사적 동독행 열차에 오르면서 "정치는 인간과 평화를 위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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