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沖繩)현에서 일본 정부의 역사교과서 왜곡 검정에 항의하는 대규모 주민집회가 개최됐다. 2008년 봄부터 사용되는 고교 교과서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강제에 의한 주민들의 집단자살 기술을 삭제토록 한 검정 의견의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였다.
29일 기노완(宜野灣)시에서 열린 집회는 오키나와현의회를 비롯 22개 단체가 주최한 현민 총 궐기대회로 치러졌다. 참가자가 11만명에 이르러 역사교과서의 왜곡 검정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의 정도를 짐작케 했다. 이 숫자는 95년 주일 미군의 일본 소녀 폭행사건에 대한 항의집회 당시 참가자 8만5,000여명 보다 많은 것으로, 72년 미국의 오키나와 반환 이후 최대 규모의 주민집회로 기록됐다.
참가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며 일본정부를 성토했다. 집단자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등장해 스스로의 체험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집단자살에 일본군이 직접 관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현민들은 검정의견의 철회와 기술회복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 일본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3월 일부 공개된 교과서 검정결과에서 일본정부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제적인 집단자결 기술을 삭제토록 한 것이 밝혀져 파문을 일으켰다. 문부과학성은 ‘오키나와 전쟁의 실태에 대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주민들이 ‘집단자살’에 몰렸다는 그동안의 기술에서 ‘일본군에 의해’를 빼도록했다.
그 결과 교과서기술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다르게 오키나와 주민이 스스로 집단자살을 시도한 것 같이 바뀌자 지역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6월 오키나와현의회가 검정의견 철회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등 현내 각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힘을 합쳐 검정의견 철회운동을 강력하게 펼쳐왔다.
오키나와현의 자료등에 따르면 2차대전 당시 일본 국내의 최대 지상전이었던 오키나와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은 9만4,000여명이다. 이중 전쟁 말기 일본군의 집단자결 강요 등으로 숨진 사람은 드러난 것만으로 수백명에 이르지만, 정확한 규모는 아직도 밝혀지고 있지 않다. 일본군의 강제 상황은 전후 각 지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져 교과서 등에 정사로 기록됐지만, 최근들어 보수ㆍ우익세력의 주장에 따라 초점이 흐려지고 있다.
보수ㆍ우익의 입김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나타난 당시 검정에서는 한국과 북한, 중국에 관한 기술을 수정하라는 의견도 많아 과거사의 왜곡ㆍ축소에 일본 정부가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이날의 집회를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일간의 최대 현안중에 하나인 주일미군기지재편 문제로 가뜩이나 민감한 지역인 오키나와에서 반정부적인 이슈가 또다시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정치쟁점화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집회에 참가한 간 나오토(菅直人) 민주당 대표대행은 “민주당은 이번 국회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도록 후쿠다 총리를 추궁하겠다”며 정부가 소극적으로 나올 경우 참의원에서의 국회결의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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