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왼쪽 팔이 빠졌다. 넘어지면서 상대에게 깔린 탓이다.
“뼈가 맞춰지지 않아 팔꿈치 아래가 덜렁거렸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에요.” 손태진(19ㆍ삼성에스원)이 16강에서 크게 다치자 관중석에 있던 아버지 손재용(45)씨는 눈을 찔끔 감았다. “아들아, 제발 기권해라. 다친 팔이 발차기에 맞기라도 하면….”
그러나 아들은 덜렁거리던 팔을 테이프로 묶은 채 승승장구해 금메달을 따냈다. 왼팔을 움직일 수 없어 왼쪽 몸통과 얼굴은 무방비.
하지만 빠른 발 놀림으로 상대 발차기를 피하면서 돌려차기, 뒷차기로 반격해 강호들을 연거푸 격파했다. 눈시울이 빨갛게 젖은 아버지 앞에 선 아들은 통증에 얼굴을 찡그렸다. “아빠, 절대 포기할 수 없었어요.”
투혼의 태권전사 손태진이 30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벌어진 2008베이징올림픽 태권도 세계예선 남자 68㎏이하급에서 우승했다.
밴텀급(62㎏이하)이 주무대인 손태진은 결승에서 올해 세계선수권 페더급(67㎏이하) 우승자 게슬러 아브레우(쿠바)를 4-1로 물리쳤다. 손태진의 부상 투혼으로 한국은 이번 대회 3위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가장 괴로웠던 건 8강전이었다. 페더급 2005년 세계선수권자 마크 로페스(미국)는 손태진의 왼팔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주위에서 ‘기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웅성거릴 정도.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을 참던 손태진은 4-4 동점인 연장전 종료 4초를 남기고 회심의 오른발 돌려차기로 로페스를 꺾었다.
올해 경북체고를 졸업한 손태진은 삼성에스원에 입단해 낮에는 단국대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태권도 훈련에 매달렸다.
국가대표 선발전(7월6일)에서 우승한 뒤 ‘이중 신분’ 논란이 일자 최근 눈물을 머금고 학교를 자퇴했다. 손태진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지만 공부도 꼭 하고 싶다”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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