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엔 주로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는데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이야기에 중점을 뒀습니다. 이야기가 자유롭게 흘러 나오도록 방치를 했다고 할까요. 그게 장편의 속성에도 맞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소설가 김연수(38)씨가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학동네 발행)을 펴냈다. 문학 계간지 <문학동네> 에 6회에 걸쳐 연재했던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을 제목을 바꿔 출간한 것으로, 경장편 <사랑이라니, 선영아> (2003) 이후 4년 만에 낸 네 번째 장편이다. 최근 장편 집필에 집중하고 있는 김씨는 2004년 연재 탈고한 <밤은 노래한다> 도 내년 초 출간할 예정이다. 밤은> 사랑이라니,> 모두인> 문학동네> 네가>
대학 총학생회 간부인 ‘나’는 1991년 상부 조직 지시로 대학생 방북단의 밀입북을 도우려 베를린에 파견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80년대 한국에서의 삶에 관한 충격적 고백이 교차 편집된 비디오를 보고 그 다큐 속 화자이자 감독으로 알려진 영화운동가 강시우와 접촉한다.
그러나 강시우는 명문대 출신의 천재 영화감독으로 신분을 세탁해 독일에 잠입한 안기부의 프락치이며, 다큐는 그를 세뇌하기 위해 안기부 직원이 촬영한 것임이 밝혀진다. 엄청난 분량의 문헌 조사를 통해 이야기의 세부까지 정교하게 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씨의 장인적 면모는 이번 작품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하지만 여전히 작가는 매끄럽게 되살린 ‘공식적 역사’가 아닌, 개인 및 개인의 ‘주관적 역사’에 방점을 찍는다. ‘나’는 운동권 동지이자 연인인 정민과, 안기부의 세뇌로 두 번의 다른 삶을 살아온 강시우와 끊임없이 과거사를 되짚으며 우리가 누구이고 왜 지금 여기서 만나게 됐는지를 납득하고자 애쓴다.
‘나’의 조부와 강시우의 부친은 둘 다 입체로 볼 수 있는 옛날식 누드사진을 지녔었고, 자살한 정민의 삼촌이 마약 소지로 체포될 당시 강시우의 집안은 2대에 걸쳐 히로뽕을 밀무역하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조우를 비범한 인연으로 여기면서 발견하는 이런 ‘사실’들은 좋게 말해 ‘합리적 추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억측’이다. 무엇 하나 확실하고 견고한 것이 없다.
그들도 알고 있다.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384쪽). 하지만 덧붙인다. “어쩌면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도 누군가가 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은 더없이 중요했다.”(391쪽) 김씨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는 이들은 과거를 재구성하게 마련”이라며 “그런 재구성은 억측이 될 수도 있지만 삶이란 우연의 연속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삶은 짐작과 다르기 십상인 ‘뿌넝숴(不能設ㆍ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의 세계라 말하면서도 작가는 그 도저한 허무에 굴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탐색과 이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그의 정신은 ‘프로 소설가’를 자처하는 그의 직업 윤리만큼이나 독자에게 깊은 신뢰를 준다.
이번 작품을 비롯, 최근 들어 연애담이 부쩍 늘었다는 질문에 김씨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책임 윤리가 사라진 90년대 이후,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유일한 통로가 연애”라며 “연애를 통해서라도 자신만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살아보는 것은 도덕적이고 인간다운 태도”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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