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개막이 닷새 앞으로 다가 왔다. 손님을 맞고 잔치를 치를 준비로 부산은 벌써 축제 분위기다. 올해는 64개국 275편의 영화가 부산 앞바다에 돛을 편다.
영화에 환장한 씨네필이든, 그저 가을바다가 보고픈 청춘이든, 모두에게 가슴 설레는 소식이다. 하지만 달뜬 분위기에 취해 있다간 자갈치 시장에서 붕장어회나 먹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진짜 영화광이라면 꼼꼼히 챙기고,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온라인 예매 45초만에 표가 동난 영화도 있다.
■ 275, 66, 26
PIFF가 아시아 최대의 영화축제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영화들이 부산에서 처음 관객과 만난다. 275편의 영화 가운데 66편이 월드 프리미어(국내외 최초 상영), 26편이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국외 최초 상영)로 소개된다. 특히 경쟁부문인 ‘뉴커런츠’에 속한 11편의 영화는 모두 부산에서 첫선을 보이는 작품들이다.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작품으로는 중국 펑샤오강 감독의 <집결호> 가 선정됐다. 1948년 인민해방군과 국민군 사이의 회해(淮海) 전투를 배경으로,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바래지 않는 인간애를 담았다. 폐막작은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序)> . 세기말적 분위기와 몽환적 화면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에반게리온> 집결호>
나머지 영화들은 총 11개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나눠 상영된다. 특히 신흥 영화강국인 루마니아, 이스라엘, 멕시코 등의 작품을 모아 놓은 ‘월드 시네마’에 속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세계 각국의 단편ㆍ실험영화를 소개하는 ‘와이드 앵글’, 인도 대만 싱가포르 등의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보여주는 ‘아시아 영화의 창’ 영화들도 놓치기 아깝다.
■ 별, 별, 별…
팬 싸인회에서나 멀찌감치 보던 스타들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것이 PIFF의 빼 놓을 수 없는 매력. 올해도 세계 영화계의 반짝이는 별들이 부산을 찾는다.
먼저 일본 톱스타 군단.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 스타 기무라 타쿠야가 ‘오픈시네마’ 섹션에 포함된 영화 <히어로> 의 상영에 맞춰 개막일(4일) 방한한다. <데스노트> 의 후지와라 타츠야, <첫눈> 의 미야자키 아오이 등도 부산을 방문한다. 유럽 출신 거장 감독들도 만날 수 있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크리스티안 문주(루마니아), <양철북> 의 폴커 슐뢴도르프(독일) 등 21명의 감독이 부산을 찾는다. 아시아영화아카데미(ASF) 교장인 모흐센 마흐말바프(이란) 감독과 딸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도 나란히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양철북> 첫눈> 데스노트> 히어로>
안성기 박중훈 강수연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 연기자 네트워크(APAN)’도 올해 발족한다. 아시아 각국의 주요 연기자들이 국내외 감독, 프로듀서, 제작자 등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아시아 정상급 배우와 전세계 영화 관계자를 연결하는 ‘스타 서밋 아시아’에는 조인성, 임수정, 위난, 퉁다웨이 등 6명의 배우가 초청됐다.
■ 편의점에서, 안방에서
지난해 2분 46초이던 예매 매진시간 기록(김대승 감독 <가을로> )이 올해는 45초(이명세 감독 )로 당겨졌다. 꼭 보고싶은 영화가 있다면 모니터 앞에서 전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아니면, 현장 판매분을 바라고 매표소 앞에서 일찌감치 줄을 서거나. 27일까지 30편의 영화가 이미 전회 매진됐다. 가을로>
그나마 위안인 건 예매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것. 부산은행 전 지점과 전국 GS25 매장에 설치된 현금자동인출기(ATM)를 통해 예매 및 발권이 가능해졌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홈페이지(www.naver.com)를 통해서도 예매를 할 수 있다. ‘피프 캐쉬’로만 가능했던 결제방식도 신용카드와 휴대폰 결제로 확대됐다. 올해는 좌석도 관객이 직접 고를 수 있게 됐다.
그래도 표를 못 구했다면 안방 극장에서 PIFF를 즐길 수도 있다. 케이블채널 OCN은 ‘미리 보는 부산영화제’ 등 다양한 특집프로그램을 편성, 영화제 안팎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한다. 다음달 10~12일에는 역대 PIFF 출품작 가운데 3편을 엄선, 매일 오전 6시에 방송한다. CJ케이블넷도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를 통해 초청작 미리보기, 감독 및 배우 인터뷰 등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 배우고, 놀고, 영화를 생각한다
갯바람이 불어오는 부산 거리를 무대로, 의미 있고 신나는 프로그램이 부산을 찾는 발걸음을 들뜨게 한다. 극장 안에서는 감독ㆍ배우ㆍ작가들과 관객이 함께 영화를 즐기는 ‘시네마 투게더’ 행사가 마련된다. 젊은 영화인들이 영화의 미래를 토론하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 거장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마스터 클래스: 나의 인생, 나의 영화’ 등 다양한 세미나와 토론회도 준비됐다.
남포동 PIFF 광장과 해운대 PIFF 빌리지엔 야외무대가 조성돼 영화인들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개설되는 야외상영장에서는 매일 밤 ‘오픈 콘서트’가 열린다. 종합 퍼포먼스 ‘시네마틱 러브’, 아시아연기자 네트워크 출범 파티, 핸드프린팅 행사 등 갖가지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9일 동안 부산 바다를 뜨겁게 달군다. 자세한 프로그램과 영화제 정보는 PIFF홈페이지(www.piff.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대현 문화대기자 leedh@hk.co.kr유상호기자 shy@hk.co.kr
■ "亞영화교류·지원 큰걸음"
올해부터 PIFF는 체제를 바꿨다. 11년 동안 김동호 혼자이던 집행위원장 자리를 대외, 대내 업무로 분리하는 투톱 체제로 전환했다.
그 한 축(대내)을 새로 맡은 이용관(51ㆍ중앙대 교수ㆍ사진) 공동집행위원장. PIFF의 창설 멤버로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2002년부터는 부위원장직을 맡아왔으며, 김동호 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언급한 그가 그려낸 올해 PIFF의 색깔은? 그가 펼칠 PIFF의 미래는?
대뜸 “아시아 영화비지니스 인프라 만들기”라고 했다. “PIFF는 출발부터 아시아 영화를 아우르는 교류와 연대를 지향했다. 2, 3년 전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느끼면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한 결과, 이제 제대로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가 올해 탄생시킨 프로그램들을 보면 결코 허풍이 아니다. 작품개발과 후반작업 등을 지원할 8억원 규모의 ACF(아시아영화펀드), 70억원 규모의 영화투자조합인 ㈜아시아문화기술투자의 결성. 아시아 필름 아카이브 설립.
아시아 영화 수입 배급 네트워크인 발콘(BALCON) 신설과 PIFF 영화들을 상시 소개하는 케이블 TV채널 설립 추진. 여기에 기존의 감독과 제작ㆍ투자자를 연결시켜주는 PPP(부산프로모션플랜)에 필름마켓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PIFF는 ‘아시아영화 교류와 지원에 관한 모든 것’이다.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많다.
“3년 전 AFA(아시아영화아카데미)를 시작할 때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이다. 이제는 PIFF도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아시아 영화에 동력을 주자는 목적에서다. 마침 한국영화, 나아가 아시아영화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해 PIFF가 그 소임을 다한 것 같아 기쁘다. 내년부터는 가시적인 성과도 나올 것이다.”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일하는데 갈등이나 어려움은 없나.
“부위원장 때부터 자연스럽게 역할분담을 해와 전혀 없다. 오히려 김동호 위원장이 자꾸 일을 더 많이 넘기려고 해 부담스럽다. 시간을 좀 달라고 해야 할 정도다. 덕분에 좋은 경험도 많이 했다. 이렇게 2, 3년 더 공부하면서 새로운 PIFF를 만들어 보겠다.”
- ‘새로운 PIFF’라고 했는데.
“사업 프로그램을 통해 아시아 영화를 발전시키고, 그것을 통해 부산을 영상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만들어 그 열매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PIFF에 대한 기대치가 큰 것도 사실이다. PIFF가 닦아놓은 도덕성과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사업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착실히 성장시킨다면 높은 기대치도 얼마든지 충족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 275편 시네마뷔페… 이 영화는 꼭!
무려 275편, 어떤 영화를 골라야 할까. 1년 동안 밤을 새우며 영화를 보고 또 본 프로그래머들이 추천한 작품 5편을 소개한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감독 크리스티안 문주)
차우체스쿠 독재 치하의 1987년 루마니아. 낙태가 금지돼 있지만, 오틸리아는 기숙사 친구 라비타를 위해 불법 낙태시술자를 고용한다. 하지만 일은 꼬이고, 오틸리아는 낙태시킨 아기를 들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려 간다. 윤리와 미학적 충격이 엇갈리는 대담하고 불편한 시선이 돋보인다.
▲검은 태양(감독 크지슈토프 자누시)
대저택의 여주인 아가타. 집안에서 거의 알몸으로 지내는 그녀는 바깥 세상과 격리된 채 남편과 둘만의 인생을 살아 간다. 하지만 이웃 남자를 총으로 쏘면서 그들의 행복은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장중한 음악의 오페라 형식에 삶의 부조리를 담았다.
▲은하해방전선(감독 윤성효)
색다른 감성의 단편을 선보여 온 감독의 장편 데뷔작. 실패한 연애의 기억이 묘하게 비틀리면서 영화 만들기와 사회에 대한 재치 있는 콜라주를 만들어 낸다. 사랑과 일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초보 감독 영재는 실어증에 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가 시작된다.
▲톤도 사람들(감독 짐 리비란)
필리핀 마닐라의 폭력조직의 모습을 열 살 꼬마의 눈으로 그려낸 영화. 톤도는 지붕과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빈민가다. 마약과 폭력이 가득한 이 정글에서, 꼬마는 밤마다 엄마가 남자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무지의 시대(감독 드니 아르캉)
냉소적이고 신랄한 시선으로 1970~80년대 정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아르캉 감독의 2006년 신작. 퀘벡 주정부의 공무원인 마르크는 시민의 민원을 하나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의 유일한 낙은 미끈한 미녀들과 사랑에 빠지거나 사무라이가 되는 공상. 폭소를 터뜨리다가도 문득 서글픔을 느끼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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