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자, 다시 비가 내린다. 가을 비가 제법 길었던 이번 연휴를 비켜 간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예전과 달리 가을 장마(?)가 계속돼도 날씨는 추워지지 않는다.
근래 눈에 띄는 기후변화이고, 이상한 인디언 서머다. 미국인들은 가을날 뒤늦게 찾아온 반짝 더위를 인디언 서머라고 부르고, 그 말은 늦은 나이에 맞는 애틋한 사랑을 가리키기도 한다. 여름이 끝나가는 서늘함 속에 다시 잠깐 푸근한 날씨를 맞으며 기뻐하는 것이다.
▦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각 절기의 특색이 많이 실종되고 있어도, 추석을 맞는 마음은 별로 퇴색하지 않는다. 추석 때 본 들판에는 가을비로 벼들이 많이 쓰러져 있어 마음이 아팠다.
밥짓기에 비유하자면, 인디언 서머에 해당할 지금은 밥에 뜸을 들일 시간이다. 작고한 언론인 박무씨는 쌀 농사와 밥짓기가 다르지 않다는 지론을 지니고 있었다.
논에 물을 모아 모를 낸 후 여름 뙤약볕을 쐬게 하고 가을 햇볕에 곡식이 여물게 하는 과정과, 솥에 물을 붓고 쌀을 안친 후 강한 불로 익게 하고 뜸을 들이는 일이 같은 과정이라는 것이다.
▦ 국내에 월남 쌀국수집이 등장한 것이 10여년 전이다. 피자와 스파게티 등을 파는 이탈리아 음식점의 증가에는 미치지 못해도, 그 동안 베트남 쌀국수집도 꾸준히 늘었다.
지난 2월 회사가 서울 번화가인 명동 근처로 이사 온 후로 쌀국수집에 가는 횟수가 늘었다. 처음에는 국수 향료가 거부감을 주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젊은 직장인들은 새 문화에 빨리 적응해서인지, 점심 시간에는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한다. 막상 베트남 현지의 쌀국수는 서울의 그것보다 향료도 요란하지 않고 더 담백하다.
▦ 쌀국수를 맛있게 먹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한 것은, 왜 우리는 쌀이 남아돈다는데 쌀국수는 개발하지 않고 밀국수만 만들어 먹나 하는 것이었다. 식구들과 이번에 추석장을 보러 갔다가, 슈퍼마켓에서 믿을 만한 회사가 쌀국수를 인스턴트 식품으로 제조해 파는 것을 보았다. 반가웠다.
추석 지나고 끓여 먹어 보니 맛도 부드럽고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대로 훌륭했는데 한편으로는 겁도 났다. 우리나라 날씨가 마침내 베트남만큼 더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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