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 / 문학동네너무도 평범하기에 더없이 끔찍한 일상
길었던 추석 연휴도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고 도무지 피할 수도 없는, 일상이 다시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일상'이라는 단어에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카버만큼 일상이란 것에 목을 매여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드러낸 작가도 없다. '도저히 놓여날 수 없는 의무와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이다.
<이웃 사람들> 의 주인공 밀러 부부는 행복하지만 어쩐지 자신들이 별볼일없이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저녁 때면 외식을 하고 곧잘 여기저기를 여행다니는 이웃집 스톤 부부가 자신들보다 행복해 보인다. 이웃>
어느날 스톤 부부가 열흘 동안 친척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밀러 부부에게 집을 보살펴 달라고 한다. 밀러 부부는 처음엔 호기심에, 그러나 점차 대담하게 스톤 부부의 아파트로 숨어들어가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엿본다.
술을 훔쳐 마시고, 옷장의 옷을 꺼내 입어보고, 은밀한 사진도 발견하며. "재밌어. 이렇게 다른 사람 집에 들어가는 거 말야." 낙원의 타락처럼 비밀스런 훔쳐보기와 일탈을 즐기던 그들, 그러다 그만 열쇠를 안에 두고 문을 잠가버리고 만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것 같은 바람에 그들은 몸을 떨며 서로를 꼭 끌어안는다.
"말하고 싶은 것만 정확히 말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카버의 냉혹할 정도로 간결한 문장이 그 바람처럼 서늘하다. 일상에 숨겨진 불안과 외로움과 폭력이 맨몸뚱이를 드러낸다.
카버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직업을 잃었거나 잃을 위기에 있든지, 돈 문제로 시달리며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거나, 결혼생활이 위기를 맞아 가정이 곧 무너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는 우리 삶에서 가장 진실한 문제가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기 때문에 가장 끔찍한 것들'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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