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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어릴적 유일한 칭찬 "책 많이 읽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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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어릴적 유일한 칭찬 "책 많이 읽는 아이"

입력
2007.09.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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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하는 것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중학교 1학년, 가정 시간에 해 간 바느질 숙제는 반 아이들 전원의 비웃음을 샀다. 선생님은 전날 밤 내내 끙끙대며 창조해간 나의 작업물을 공중에 펄럭펄럭 흔들었다.

내가 찍 소리도 하지 못했던 이유는,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그 홈질과 박음질 자국들이 참으로 삐뚤삐뚤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또 어떤가? 체육 시간에 백 미터 경주가 예고되어 있는 날엔, 대체 어떤 핑계를 대야 빠질 수 있을까를 연구하느라 점심밥도 거르곤 했다.

수학풀기, 그림그리기, 노래부르기, 하다못해 라면 끓이기에 대해서조차 “야, 너는 앞으로 그거 하지 마라”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세상의 어떤 아이도 주눅이 들 것이다.

좀 소심한 성품을 타고난 아이라면, ‘역시 난 뭘 해도 안 돼’의 부정적 자아상을 내면화하여 사회 부적응자로 성장했을 가능성도 없다고는 못하리라.

그러나, 그 아이가, 어쨌거나,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삶을 영위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된 건 전적으로 ‘독서’의 공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어릴 적 내게 쏟아진 거의 유일한 상찬이 바로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던 것이다.

명절날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이, 제 방에 꼼짝없이 처박혀 책을 들이파는 꼬마에게 한 마디씩 툭 던지곤 하는 말이었다.

실은, 사람으로 바글거리는 안방과 거실의 풍경이 어색하여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 안착한 곳이 방구석이었을 뿐인데. “반에서 몇 등이나 하니?” 같은 어른들의 질문들을 피하기 위하여 선택한 행위가 책 속에 몰두하기였을 뿐인데.

보름달이 둥글게 차오르는 추석, 친척들이 평화로이 모여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어쩐지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다가 사라지는 아이, 방 한구석에 몸을 웅크리곤 책 속에다 수줍은 눈길을 파묻는 아이가 있다면 그 작은 어깨를 가만히 짚어주자. 그리고 환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여주자. “너는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정이현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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