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이 18일 신정아(35)씨의 영장 기각 사유로 “범죄 혐의가 대체로 소명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신씨가 미국으로 도피한 것은 수사 시작 전이므로 도피 우려도 없다”는 이유를 제시하자 법조계에서는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
“미국으로 도망한 것 자체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말을 맞추려는 의도가 있었다”(하창우 서울변호사협회 회장) “공범자와 입을 맞추는 것도 증거 인멸이다”(채근직 변호사) 는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를 영장 발부의 흔들림 없는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판단의 잣대가 너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영장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검찰과 수사검사들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를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이 무엇이냐”며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의 경우도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이 김상진씨에게 차명 휴대폰으로 ‘합법적인 정치 후원금 외에는 다른 돈은 없었다고 진술해 달라’고 수차례 전화했다”며 통화내역과 김씨의 진술자료 등을 제시했지만 법원은 이를 증거 인멸의 근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법조계 인사들과 시민단체는 법ㆍ검의 해묵은 갈등을 풀기 위해 명확한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원은 성격이 제각각인 개별 사건의 영장 발부 기준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국의 영장전담 판사들이 영장 발부 기준과 관련한 논의를 하고 있지만 재판에 양형기준을 적용할 수 없듯이 영장실질심사도 재판인지라 일률적인 기준을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영장전담 판사 홀로 4~5시간의 짧은 시간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중요 사건의 경우 수 천 페이지에 달하는 영장 내용과 수사 기록을 보고 구 속여부를 결정하는 구조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의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염원섭 부산지법 영장전담 판사도 오후 2시부터 3시간 가량 피의자 심문에 참가한 뒤 1m가 족히 넘는 방대한 자료를 약 5시간 동안 살펴본 뒤 밤 10시께 기각을 결정했다. 영장전담 판사의 단위시간 업무 강도가 과도하다는 지적은 법원 내부에서조차 제기되고 있다.
영장실질심사를 사실상 대법원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 예규(1084호)에는 중요 사건의 경우 압수수색영장 청구 단계부터 대법원에 보고토록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영장전담판사가 대법원과 의견 조율을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을 행정적으로 관리할 목적일 뿐이며 사전보고가 아니라 사후보고를 원칙으로 하고있다”고 해명했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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