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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영화 '사랑'으로 돌아온 곽경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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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영화 '사랑'으로 돌아온 곽경택 감독

입력
2007.09.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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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 조건도 대가도 없이, 목숨을 바쳐 영원히. 아름다운 말이지만, 비현실적이다. 세상에 그런 사랑은 없다.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아집이다. 나이 스물만 넘으면, 누구나 알게 되는 진실 아닌가.

“아니지예. 세상에는 그보다 더한 사랑도 많습니다. 내가 20년 전에 헌병대 방위였는데, 관자놀이 총으로 쏴 죽는 애들의 99%는 여자 때문이었어요.” 곽경택(41) 감독은 사랑을 믿었다. <태풍> 이후 2년의 침묵 끝에 이 경상도 사내가 내 놓은 영화 제목은 <사랑> 이었다. <친구> <똥개> <챔피언> 등으로 투박하고 거친 수컷들을 스크린 속에 풀어 놨던 곽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의외였다.

그는 “정말로 가슴 저리는 사랑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며 어린 시절 큰 영향을 받은 영화 한 편을 소개했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애수>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죽게 되는데, 남자는 그걸 추억으로 담고 현실로 돌아갑니다. 왜 안 따라 죽는지, 정말로 이해가 안 됩디다. 이번 영화는 어쩌면 그때의 기억에 대한 앙갚음이랄까요.”

그의 말대로 미주(박시연)를 향한 인호(주진모)의 사랑은 순애보를 넘어 판타지에 가깝다. 순정만화에서나 볼 법한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 곽 감독은 판타지라는 표현을 거부하지 않았다. “<친구> 도 판타지에요. 절대적 우정에 대한 향수, 그것 때문에 많은 관객이 들었다고 봅니다. 이번 것은 사랑에 대한 영화적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사랑> 도 <친구> 정도의 드라마타이즈(극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이런 사랑은 절대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이런 뜻은 아닙니다.”

영원한 사랑이 있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다간, 인터뷰가 말싸움으로 끝나고 말 것 같았다. 사랑에 대한 감독의 신념을 확인하고,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그의 영화 속에서 중ㆍ고교 시절의 기억이 거친 욕설, 폭력과 범벅된 채 데자뷰처럼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절이 제일 감성이 풍부했던 시절인 거 같습니다. 젊음의 에너지는 끓어 넘치지만, 세상은 한없이 억압적이고… 그 시절이 내 감성의 원형질로 굳어진 듯합니다. 부산을 배경으로 삼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고요.”

하지만 굵은 터치로 그려내는 그의 영화와 오늘날 10, 20대의 취향 사이에는 만만찮은 간극이 있다. “이번 영화도 투자자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습니다. 기획ㆍ마케팅 쪽의 20대 여자 직원들도 반대하고… 앞으로 영화 못 찍겠다, 하는 공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영화 관객층이 넓어지고 있으니까 거기 희망을 겁니다. 딸애 유치원에 가 보니까 아빠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영화 보는 거래요. 라면 다음으로. 예전엔 아빠들은 아예 영화 안 봤잖습니까.”

<태풍> 에서 확대되는 듯 했던 곽 감독의 시선은, 이번 영화에서 다시 <친구> 의 그것으로 회기한 듯하다. 충무로 최고의 블루칩으로 200억원에 가까운 제작비를 끌어들였던 2년 전에 비하면 퇴행의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 <태풍> 이 욕심만큼 흥행이 안 된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 을 찍은 건 아닙니다. 지금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한국적 규모(제작비 30억~40억)의 영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닙니까.”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는 감독, 사변적 주제에 천착하는 감독들 사이에서 그는 우직하게 드라마로 승부를 건다. “제대로 영화를 하려면 영화를 ‘갖고 놀’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때가 아니지예.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내공도 없습니다. 그 경지가 되려면 최소한 50살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입봉(데뷔)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위선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전 아직 내 자신이 인턴십을 밟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 ‘찐한’ 사람의 얘기를 담는 것, 그게 아직 제가 해야 할 일이겠지예.”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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