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아침7시. 롯데백화점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김남희(28)씨는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인사팀장이었다.
"남희씨, 추석선물 배송할 일손이 모자라 사무 직원들이 모두 나서야 할 판이야. 지금 바로 백화점 주차장으로 와줘. " 연례행사처럼 있는 일이라 놀랄 것도 없었다. 남희씨는 즉시 간편한 옷을 걸친 후 집을 나섰다.
부시시한 모습으로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지하주차장에 들어서니 바쁘게 선물세트를 나르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추석 배송물량이 폭주하면서 사무 직원들이 대거 '신속배송팀'으로 파견된 것. 신속배송 서비스는 콜 택시를 이용해 정육 건어물 청과 등 신선도가 생명인 10여개 추석선물세트를 당일 배송해주는 제도다.
롯데백화점 본점 기준 9월 12일부터 19일까지 8일간 신속배송 실적은 약 1만1,000여건. 전년 동기대비 10% 가량 늘어난 수치다. 추석 직전까지 밀려 있는 예약건수를 고려할 때 배송실적이 15%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배송아르바이트 인원도 작년보다 15% 늘린 150명을 투입했다.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땐 본사 직원까지 동원된다. 백화점 측은 추석경기가 예년보다 빨리, 더 크게 '터진' 이유를 '길어진 추석연휴'와 '대통령 선거일정'때문으로 분석했다.
긴 추석연휴(5일) 탓에 고향 방문자들이 늘어나니 추석선물 수요도 함께 늘었다는 것이다. 예년과 달리 이상할 정도로 대규모 선물주문이 많은 것은 임박한 대선과 관련 있지 않겠냐는 것이 마케팅 직원의 추측이다.
김씨가 이날 맡은 물량은 총 29건. 대충 봐도 작년보다 선물 단가가 많이 올랐다. 가장 인기 있는 정육세트는 지난해 10만원대에서 20만원대 안팎으로 바뀌었다.
김씨가 맡은 구역은 압구정동 아파트단지부터 단독주택이 많은 사당ㆍ신림ㆍ봉천동까지. 김씨는 배송차량에 물품을 싣고 전표와 일치하는지 꼼꼼히 점검한 후 차에 올랐다. 출발과 동시에 첫 번째 목적지인 압구정동 A아파트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선물배송 중임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롯데백화점 선물 배송팀입니다." 집 앞에 도착한 김씨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주인은 인터폰으로 얼굴을 한참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줬다.
수년 전 배송직원을 사칭한 범죄가 빈발해 백화점도 여직원 채용을 늘렸다. 롯데백화점 신속배달팀의 여성 비율은 70%. 고객 만족도가 높아 작년보다 10% 늘어났다.
선물을 거절하는 고객도 간혹 눈에 띄었다. 이런 선물은 대부분 건설사 등 업체들이 보내는 30만원대 이상의 특급 상품들이다. 수령자는 주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원들. 서초ㆍ강남 지역에 배달한 선물세트 16개 중 15개가 업체로부터 왔으며, 그 중엔 60만원이 넘는 고가품도 있었다.
마지막 고객은 사당동 달동네에 사는 이음전(87) 할머니. 한참을 헤매다 겨우 찾은 할머니에게 모 교회 집사가 보내는 선물을 건넸더니 "고맙다"며 김씨의 손을 덥석 잡는다. 2평 남짓한 골방에 사는 할머니는 "딸과 손자가 있지만 모두 결혼해 올 추석에는 만나볼 수 없을 것 같다"고 쓸쓸히 말했다.
5만5,000원부터 65만원까지의 추석선물 배송을 모두 끝낸 시간은 오후5시. 김씨는 이날 방문했던 달동네부터 압구정 아파트까지 한가위의 넉넉함이 골고루 넘치기를 바라며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심혜이 인턴기자(중앙대 정치외교학과 3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