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성고 대강당.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세종과학고 2008학년도 입시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 신설 학교의 설명회 자리인 탓에 참석자는 100명 정도 였지만, 특수목적고에 대한 식지 않는 관심을 반영하듯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내년 3월 문을 여는 세종과학고는 서울ㆍ한성과학고에 이어 서울 지역에 세 번째로 신설된 과학고다. 높은 내신 성적 비중, 국민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전형 등 기존 과학고 전형과는 다른 내용이 많아 일찌감치 이목을 집중시킨 학교다.
최근 세종과학고 초대 교장에 임명된 신정숙(59) 교장이 연단에 오르자 학부모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쏠렸다. 메모를 위해 미리 준비한 수첩을 펴든 손을 분주히 움직이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신 교장은 “빌게이츠와 같이 수만, 수천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최고의 영재를 기르겠다”며 각종 교육지원책과 프로그램을 당당하게 내놓았다.
그러나 “시설이 좋고 특별활동이 다채롭다”는 신 교장의 말에 솔깃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었다. 관심사는 하나로 모아졌다.“과학고 진학이 과연 대입에서 유리합니까, 아니면 불리합니까.”, “대학들이 내신을 강화는 추세인데 과학고가 상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습니까.”, “외국 대학 진학에 유리한 국제 올림피아드 준비를 어떻게 해 줄 계획입니까” 등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송곳 같은 질문에 학교측은 진땀을 빼야 했다.
서울 목동에서 온 주부 김모(51ㆍ여)씨는 “아들이 학교에서 1, 2등을 하는 데도 두 달 동안 300만원을 들여 대치동에 있는 특목고 학원을 보냈다”며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과학고 일반고 구분없이 내신 비중을 무조건 높여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시교육청은 올해부터 서울 권역별로 특목고 입시설명회를 열고 있다. 난립하는 사설 교육업체들의 입시설명회는 왜곡된 정보가 판을 쳐 객관적인 정보를 주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비판 여론도 있다. “공교육을 책임 진 교육 당국이 앞장서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참석자 대부분은 이런 시각에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학부모 박재형(47)씨는 “학교의 진학지도에는 한계가 있고, 사설 입시기관들도 학생 유치를 위해 자극적인 말로 정보를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학부모 입장에선 교육 당국이 차리리 입시 정보의 창구 역할을 맡는 게 낫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특목고를 규제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부쩍 잦아진 탓인지 불안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과학고 진학을 고민 중이라는 이중훈(15)군은 “과학고는 소신을 갖고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 데도 외고와 함께 특목고로 묶여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부모 이모(42ㆍ여)씨는 “일반고에서는 내신 1, 2등급을 받아도 좋은 대학에 가기 힘들지만 과학고와 외고는 내신이 불리하더라도 좋은 여건에서 실력을 키울 수 있어 진학과 유학의 기회가 훨씬 많다. 특목고를 사교육의 진원지로 만든 주범은 다름아닌 정부”라고 주장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영재 교육 비율은 전체의 1%가 채 안된다”며 “교육부가 단지 특목고라는 이유로 과학고 신설을 금지하겠다는 발상은 걸음마 수준에 있는 영재 발굴과 육성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김혜경 인턴기자(이화여대 국문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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