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이다. 지금까지 은행, 보험, 증권 등 병사들이 각 전장에서 ‘각개 전투’를 했다면, 이제는 이들이 연합군(금융그룹)을 형성해 ‘전면전’을 펼칠 태세다.
상당 기간 전부터 전열을 가다듬어 온 우리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에게 최근 국민은행과 기업은행이 금융그룹화 의지를 밝힘에 따라 대결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그룹화 추세를 우리 금융계도 거스를 수 없는 탓이다. 방카슈랑스(은행 창구에서 보험 판매), 자본시장통합법(증권, 자산운용, 선물 등 장벽 해소) 등 제도적인 기반도 불을 지폈다.
이들이 자회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면, 금융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도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릴 수 있다. ‘원스톱’ 금융 서비스, ‘토털’ 금융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각 금융그룹과 은행들은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업금융이 강한 우리금융지주는 최근 한미캐피탈 인수에 성공하며 소비자금융 분야 강화에 나선데 이어 보험 자회사가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LIG생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국내 최대 카드사인 LG카드 인수를 완료하면서 은행, 카드, 증권, 보험 등을 두루 갖춘 가장 탄탄한 자회사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전문 투자은행(IB)을 지향하는 HFG IB증권을 출범시키며 자통법 시행에 대비한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국민은행과 기업은행이다. 이들이 새롭게 금융그룹 경쟁에 가세할 경우 적잖은 판도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은행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국민은행은 연내 이사회에서 지주회사 설립을 공식화하고, 증권사 신설 또는 인수를 서두르고 있다.
시중은행들을 바짝 위협하고 있는 국책은행 기업은행도 중장기적으로 금융그룹화를 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최근 증권사 인수ㆍ설립, 보험사 인수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제 겨우 틀만 갖춰졌을 뿐이다. 국내에 금융지주회사가 첫 선을 보인 것이 벌써 6년이 됐지만,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금융지주회사 체제 아래서 ‘1+1=2’ 가 아니라 ‘1+1=3’, 아니 그 이상이 되는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과도한 은행 편중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가장 포트폴리오가 잘 돼 있다는 신한금융의 경우에도 총자산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8%에 달한다. 우리금융(88%)과 하나금융(95%)의 은행 편중은 더욱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회사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히 자회사들을 수직적으로 계열사로 두는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금융그룹들처럼 기능별 조직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위원은 “자회사간 협조 체제가 원만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수직구조와 수평구조가 교차하는 매트릭스 조직이 돼야 한다”며 “단순히 여러 자회사를 많이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 금융그룹의 위상이 강화될 것으로 봐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지배구조도 금융그룹 성공의 열쇠다. 선진 금융그룹들의 최고경영자(CEO)는 10년 이상 장수하면서 경영의 연속성을 보장 받는다. 사외이사 역시 임기는 대부분 1년이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장기 재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금융계 한 임원은 “경영진의 장기 재임을 보장하되 독단적 경영으로 흐르지 않도록 이사회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투명한 견제와 균형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됐다. 저마다 ‘선도 금융그룹’이 되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이 은행을 주축으로 구조조정과 부실 떨어내기 그리고 규모 확대의 경쟁이었다면,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금융그룹 간 시너지 창출의 질적 경쟁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전쟁의 결과는 한국의 금융경쟁력 제고와 금융 소비자들의 후생증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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