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말로 모호함을 즐겨요. 성별 구분이 안 되는 제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나요?”
사진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설치작업으로 당대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 미국 작가 로니 혼(52)이 아시아 첫 개인전을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갖는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그는 “영어권 바깥으로 첫 나들이를 나선 내 작품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무척 궁금하다”고 했다.
이름이나 외모로는 한눈에 여성임을 알아보기 힘든 그는 삶에서뿐 아니라 작품에서도 모호함이라는 개념을 고수한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인물들의 사진이 쌍을 이루고 있는 설치 작품들이 많은데, 대부분 2,3초의 짧은 간격을 두고 찍은 것들이다. “이 2,3초 안에 인지와 지각에 관한 거의 모든 일이 발생합니다.
그 간격은 대상의 아이덴티티에 아주 중요한 것이죠.” 동일한 대상의 같음과 다름이라는 주제는 템즈강의 다양한 표정을 담은 연작 사진 <템즈의 여러 모습으로부터> , 시간차를 두고 찍은 아이슬란드 온천과 성별이 모호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각각의 쌍으로 구성한 <풍경되기> 같은 작품들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풍경되기> 템즈의>
뉴욕 토박이인 그의 인생은 1975년 미국 바깥으로 처음 나가본 아이슬란드 여행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의 시집만을 들고 떠났던 그 고독했던 여행을 통해 그는 언어와 미술의 행복한 조우를 발견했다.
“디킨슨과 저는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공통됩니다. 투명한 동시에 불투명한 언어, 간결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디킨슨의 언어는 고정된 의미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저와 비슷하죠.”
디킨슨의 시구를 가늘고 긴 알루미늄 막대에 새긴 ‘화이트 디킨슨’과 ‘열쇠와 신호’ 같은 작품은 운율과 문법이 파격적인 디킨슨의 문장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디킨슨의 영향이 내 모든 작품에 배어 있기를 바란다”는 그는 “생전 고작 7편의 시를 발표하고 자살한 후 수천편의 시가 발견된 디킨슨의 불우했던 생애가 제 작품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미술작가로는 드물게 언어를 주된 질료로 활용하는 그는 “언어라는 내 작품의 중요한 요소를 빼면 시각적 이미지만 남는데, 한국 관람객들이 여기에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된다”고 했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국경을 넘어선 다국적문화의 보편성입니다. 작품의 메시지 같은 건 없어요. 관객이 보고 경험하는 것이 바로 그 작품의 의미니까요.” 20일 개막하는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계속된다.
글ㆍ사진=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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