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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라마단 풍속에도 정쟁·폭력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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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라마단 풍속에도 정쟁·폭력의 그림자

입력
2007.09.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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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알라 알 나자르는 라마단(금식월) 기간 중 새벽에 동네를 돌며 사람들을 깨우는 게 직업이다. 해 뜨기 전 무슬림의 첫번째 의무인 새벽기도를 늦지 않게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새벽 2시면 어김없이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골목길을 누비는 그는 과거에는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일부 고약한 주민들한테 물벼락을 맞는 것 말고는 자신의 일에 만족해 했다. “고맙다”며 팁을 주는 주민들도 많아 하룻밤에 1,000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버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수반(대통령)직을 차지하고 있는 파타당과 의회를 장악한 하마스가 내전을 방불케 하는 권력 다툼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았던 그의 직업에도 달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잠을 깨우기 위해 부르던 노래 가사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인 인물이나 내용이 조금만 들어가면 상대편 지지자들한테 수모를 당하기 일쑤다. 파타당 지지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하마스 지도자를 노래했다가는 생명의 위협도 감수해야 한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과거 양동이로 물벼락을 맞는 건 지금 보면 애교 수준이다.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나빠지면서 수입도 줄었다. 자신이 혼자 하던 구역에 경쟁자도 나타났다. 반면 규제는 더 늘어났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면서 나자르는 파타당 한곳에서 받으면 됐던 허가증을 하마스로부터도 받아야 했다.

하마스와 파타당의 대립은 라마단의 일상도 바꾸어 놓았다. 금식이 끝나는 밤 시간대 종교적 색채가 짙은 TV 연속극이 인기가 높은 것을 착안해 파타당이 이를 패러디한 현대풍의 인터넷 동영상을 새로 선보였다.

하마스가 전통적으로 라마단의 엄숙함을 강조하는 것을 겨냥한 대민 전략이다. 이를 놓고 TV 배우들 사이에서 설전이 오가고, 서로를 비난하는 내용의 풍자극이 등장했다.

어린이들이 라마단을 기념하기 위해 해가 지면 마을을 돌아다니며 비추던 랜턴은 폭죽으로 바뀌었다. 오랜 동안 계속된 이스라엘과의 전쟁, 두 당의 내분을 겪으면서 폭탄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때문이다.

심지어 하마스와 파타당이 상대방 지도자를 암살하던 수법을 본 따 대문 앞에 폭발력 강한 사제 폭죽을 설치하고 도망가는 일도 많아졌다. 이 때문에 라마단이 보름 정도 지난 지금까지 50여명의 어린이가 손가락이 잘리거나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정신분석가인 파델 아부 헤엔 박사는 “사회 분위기가 험악해질수록 어린이들은 내면의 잔혹성을 표현하기 위해 더 시끄럽고 강력한 장난감을 찾는다”고 말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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